사공명 주생중달(死孔明 走生仲達)
-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다.
[죽을 사(歹/2) 구멍 공(子/1) 밝을 명(日/4) 달릴 주(走/0)
날 생(生/0) 버금 중(亻/4) 통달할 달(辶/9)]
죽은 공명(死孔明)이 살아있는 중달을 쫓았다(走生仲達)는 유명한 성어다. 공명은 물론 諸葛孔明(제갈공명)이고 중달은 司馬仲達(사마중달)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덧붙이면 공명은 諸葛亮(제갈량), 중달은 司馬懿(사마의, 懿는 아름다울 의)의 자를 가리킨다. 死諸葛 走生仲達(사제갈 주생중달)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앞서 소개했다. 走와 生의 글자를 잘못 해석하여 ‘죽은 제갈이 달려가 중달을 낳았다’고 한 훈장을 놀리는 이야기도 많이 알려졌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蜀(촉)나라의 승상이었던 제갈량(181~234)은 劉備(유비)가 三顧草廬(삼고초려)로 모셔온 만큼 최고의 전략가, 만고의 충신으로 추앙받는다. 臥龍(와룡)선생으로 불리며 천문 지리에 능통하여 신출귀몰한 계략을 썼다고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는 흥미진진하게 기록한다. 여기 비해 사마의(179~251)는 여러 차례 촉나라의 침공을 저지한 魏(위)나라의 군략가였지만 성어가 남아있는 만큼 겁쟁이로 오명을 덮어쓰고 있다. 이런 전통적인 해석보다 달리 보는 견해가 있다.
10만 대군을 이끌고 五丈原(오장원)에 진을 친 공명은 속도전을 노렸고 이를 간파한 중달이 지구전을 펼쳤다. 격무에 시달린 공명이 죽고 촉군이 후퇴할 때 중달이 급습했다가 반격에 놀라 허둥댔다. 여기서 공명의 인형을 보고 중달이 혼비백산했다는 이야기로 되었다. 실제는 추격을 하다 물러났지만 공명 때문이 아니고 세심하고 신중한 중달의 성격 때문이라 한다. 대군을 이끌며 지구전을 펼친 중달은 결국 최후의 승리를 거두고 권력의 기반을 탄탄히 잡게 됐다. 뿐만 아니라 중달은 손자 司馬炎(사마염)이 晉(진)나라를 세우게 되자 高祖(고조)로 불리기까지 했다.
해석을 달리 해서 또 다른 흥미를 느낄 수는 있어도 성어만큼은 뜻이 그대로다. 제갈량을 비유해 죽은 뒤에도 적이 두려워 할 정도로 뛰어난 장수를 일컫는다. 죽은 뒤의 촉군을 쫓았다가 수레에 세운 좌상을 보고 말머리를 돌려 도주한 사마의는 비겁의 대명사로 남았다. 한 때의 오명을 극복하고 뒤에 큰 업적을 이룬다면 또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이는 나름대로의 몫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