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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13. 16:40 카테고리 없음

 

사공명 주생중달(死孔明 走生仲達)

-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다.

[죽을 사(歹/2) 구멍 공(子/1) 밝을 명(日/4) 달릴 주(走/0)
날 생(生/0) 버금 중(亻/4) 통달할 달(辶/9)]

죽은 공명(死孔明)이 살아있는 중달을 쫓았다(走生仲達)는 유명한 성어다. 공명은 물론 諸葛孔明(제갈공명)이고 중달은 司馬仲達(사마중달)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덧붙이면 공명은 諸葛亮(제갈량), 중달은 司馬懿(사마의, 懿는 아름다울 의)의 자를 가리킨다. 死諸葛 走生仲達(사제갈 주생중달)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앞서 소개했다. 走와 生의 글자를 잘못 해석하여 ‘죽은 제갈이 달려가 중달을 낳았다’고 한 훈장을 놀리는 이야기도 많이 알려졌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蜀(촉)나라의 승상이었던 제갈량(181~234)은 劉備(유비)가 三顧草廬(삼고초려)로 모셔온 만큼 최고의 전략가, 만고의 충신으로 추앙받는다. 臥龍(와룡)선생으로 불리며 천문 지리에 능통하여 신출귀몰한 계략을 썼다고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는 흥미진진하게 기록한다. 여기 비해 사마의(179~251)는 여러 차례 촉나라의 침공을 저지한 魏(위)나라의 군략가였지만 성어가 남아있는 만큼 겁쟁이로 오명을 덮어쓰고 있다. 이런 전통적인 해석보다 달리 보는 견해가 있다.

10만 대군을 이끌고 五丈原(오장원)에 진을 친 공명은 속도전을 노렸고 이를 간파한 중달이 지구전을 펼쳤다. 격무에 시달린 공명이 죽고 촉군이 후퇴할 때 중달이 급습했다가 반격에 놀라 허둥댔다. 여기서 공명의 인형을 보고 중달이 혼비백산했다는 이야기로 되었다. 실제는 추격을 하다 물러났지만 공명 때문이 아니고 세심하고 신중한 중달의 성격 때문이라 한다. 대군을 이끌며 지구전을 펼친 중달은 결국 최후의 승리를 거두고 권력의 기반을 탄탄히 잡게 됐다. 뿐만 아니라 중달은 손자 司馬炎(사마염)이 晉(진)나라를 세우게 되자 高祖(고조)로 불리기까지 했다.

해석을 달리 해서 또 다른 흥미를 느낄 수는 있어도 성어만큼은 뜻이 그대로다. 제갈량을 비유해 죽은 뒤에도 적이 두려워 할 정도로 뛰어난 장수를 일컫는다. 죽은 뒤의 촉군을 쫓았다가 수레에 세운 좌상을 보고 말머리를 돌려 도주한 사마의는 비겁의 대명사로 남았다. 한 때의 오명을 극복하고 뒤에 큰 업적을 이룬다면 또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이는 나름대로의 몫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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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12. 13:17 카테고리 없음

봉공여법(奉公如法)

- 공적인 일을 법대로 처리하다.

[받들 봉(大/5) 공평할 공(八/2) 같을 여(女/3) 법 법(氵/5)]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다. 만인은 법 앞에서 공평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이제는 유명한 성어가 된 지강헌표 有錢無罪 無錢有罪(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계속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그만큼 공정하게 법이 집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法(법)의 옛 글자 灋(법)은 집행이 물 흐르듯(氵 去) 공평해야 하고, 유무죄를 아는 동물 해태 廌(치)가 들어있는 이유가 된다고 법 관련 성어를 말할 때마다 얘기했다. 作法自斃(작법자폐), 法不阿貴(법불아귀) 舞文弄法(무문농법) 등이다. 하지만 권력에 막히고 재력에 막혀 잘 흘러가지 못한 적이 없지 않았기에 유사한 말이 많이 전해졌다.

모든 사람에게 두루 관계되는 공적인 일(奉公)은 법에 의해 처리해야 한다(如法)는 이 말은 ‘史記(사기)’에서 나왔다. 廉頗藺相如(염파인상여, 頗는 자못 파, 藺은 골풀 린) 열전에 실렸다. 戰國時代(전국시대) 趙(조)나라의 두 명신은 刎頸之交(문경지교, 刎은 목자를 문, 頸은 목 경)란 말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성어의 주인공은 趙奢(조사)라는 명장이다. 그가 젊을 때 전답에 대한 조세 업무를 담당하던 하급관리로 있었다. 전국시대 말기 각 제후국에서 빈객을 거느리고 있던 귀족이 있었는데 조나라에선 平原君(평원군)이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자신의 지위를 믿고 평원군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 했다. 강직한 조사는 법에 따라 집사 아홉 명을 붙잡아 처단했다. 크게 화가 난 평원군이 해치려 하자 조사가 설득했다. 나라의 공자인 집에서 세금을 내지 않으면 국법은 무너지고 나라가 쇠약해지면 공자도 부를 누리지 못한다고 했다. ‘공과 같은 고귀한 분이 공적인 일을 법과 같이 받들면, 온 나라가 한 마음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라가 부강해집니다(以君之貴 奉公如法則上下平 上下平則國彊/ 이군지귀 봉공여법즉상하평 상하평즉국강).’ 평원군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조사를 현인이라며 왕에게 천거해 국방을 튼튼히 하는 장수를 맡겼다.

‘법의 날’은 1964년 처음 제정되었을 때는 노동절을 법의 날로 정한 세계추세에 따라 5월1일로 했다가 2003년부터 바뀌었다. 이 날은 근대적 사법제도를 도입하는 계기가 된 재판소구성법이 시행된 날로 국민의 준법정신을 높이고 법의 존엄성을 진작시키는 것이 목적이라 한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법을 집행함에 있어 조금도 사사로움이 개입되지 않는 만인 앞에 공평하다는 것을 체감하도록 하는 것이 앞서야 할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2019. 6. 11. 13:32 카테고리 없음

사인여천(事人如天)

-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겨라.

[일 사(亅/7) 사람 인(人/0) 같을 여(女/3) 하늘 천(大/1)]

사람은 태어날 때 선과 악, 어느 쪽에 가까울까. 예부터 性善(성선), 性惡(성악)으로 대립했지만 오늘날도 주장은 여전하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고 하는가 하면, 이성은 고귀하고 능력은 무한하고 행동은 천사와 같다며 인간은 위대한 걸작이라 하기도 한다. 그래서 파스칼은 신과 동물의 중간적 존재에 사람을 위치시켰다. 철학자들의 결론 없는 주장은 뒤로 하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란 말은 모두 수긍한다. 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인권선언도 모두 옳다.

평등할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섬기기(事人)를 하늘과 같이 하라(如天)는 이 말 이상으로 사람을 중시한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민족종교 天道敎(천도교)의 기본 사상인 이 말은 조선 말엽 水雲(수운) 崔濟愚(최제우) 선생이 東學(동학)을 창시할 때부터 사람을 하늘처럼 모신다는 侍天主(시천주) 가르침에서 나왔다. 여기서 하늘은 사람인 한울님을 가리키고, 사람의 신분이나 성별에 따라 차별하는 바 없이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2대 海月(해월) 崔時亨(최시형), 3대 義菴(의암) 孫秉熙(손병희) 교주로 체계화되면서 사람이 곧 하늘이란 人乃天(인내천)으로 굳어졌다.

해월 선생이 한 유명한 말을 보자. ‘도인의 집에 사람이 오거든 사람이 왔다고 하지 말고 하느님이 강림하셨다고 말하라(道家人來 勿人來言 天主降臨爲言/ 도가인래 물인래언 천주강림위언)’. 이러한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사람을 하늘같이 여기는 삶인데 그 방식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자신의 내면에서 길러나가는 수행을 통해서만이 한울님을 모실 수 있다는 養天主(양천주), 타인을 신분과 성별에 의해 차별하지 않는 待人(대인), 나아가 사람만이 아닌 우주만물이 모두 한울님이 기화되어 이뤄졌다는 接物(접물)이 그것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교리는 모르더라도 사람이 곧 하늘이면 세상 민심이 하늘의 뜻인 것은 누구나 안다. 사람을 하늘처럼 잘 섬겨야 하는 사람은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멋들어진 구호나 공약으로 이 말을 내세워놓고 정작 실천할 자리가 주어지면 제몫 챙기는 사람이 더 많다. 또 남을 미워하면 내 안의 한울님을 상하게 한다고 여겼던 동학은 농민혁명이 비폭력 평화시위의 근원이 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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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10. 04:52 카테고리 없음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 죽은 뒤의 약방문

[죽을 사(歹/2) 뒤 후(彳/6) 약 약(艹/15) 모 방(方/0) 글월 문(文/0)]

약방문은 약을 짓기 위하여 약 이름과 약의 분량을 적은 종이다. 줄여서 方文(방문)이나 藥和劑(약화제)로도 쓰지만 오늘날의 處方箋(처방전)이라면 쉽게 알아본다. 약방문에 대해 ‘莊子(장자)’의 逍遙遊(소요유)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손을 트지 않게 하는 약을 발명한 사람이 세탁을 하고 있었다. 宋(송)나라의 한 사람이 그 약방문을 돈을 주고 사서 왕에게 유세하여 수군에 사용하게 한 결과 큰 효과를 봤다. 송나라 사람은 그 공으로 봉토를 받았다.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에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교훈이다.

아무리 神醫(신의)라고 알려진 耆婆扁鵲(기파편작)의 약방문이라도 사람이 죽고 난 뒤에는 휴지 조각이다. 사후약방문은 이처럼 시기를 잃어 낭패를 보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평소에는 방비를 소홀히 하다가 실패한 뒤에야 허둥지둥 대비하는 것이나 일이 실패로 끝난 뒤에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소용이 없다고 할 때 두루 쓰인다. 死後淸心丸(사후청심환), 成服後藥方文(성복후약방문), 神祀後鳴缶(신사후명부) 등도 똑 같은 말이다.

조선 仁祖(인조) 때의 학자 洪萬宗(홍만종)이 지은 문학평론집 ‘旬五志(순오지)’에 이런 말이 나온다. ‘굿 뒷날 장구친다는 것은 일이 다 끝난 뒤에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을 일컬음이다. 말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은 양을 잃어버린 뒤 우리를 손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神祀後鳴缶 言後於事 失馬治廐 言亡羊補圈之類/ 신사후명부 언후어사 실마치구 언망양보권지류).‘ 缶는 장군, 질장구 부, 廐는 마구간 구. 조선 후기 실학자 李德懋(이덕무, 懋는 힘쓸 무)의 ’洌上方言(열상방언)‘에는 ’신사 다 끝난 뒤에 부질없이 장구친다(神祀後 浪鳴缶/ 신사후 랑명부)로 나온다. 비슷한 뜻을 가진 속담도 많다. '늦은 밥 먹고 罷場(파장) 간다', '단솥에 물 붓기' 등이다. 장이 끝난 뒤에 가 보았자 소용없고, 벌겋게 달아 있는 솥에 몇 방울의 물을 떨어뜨려 보았자 솥이 식을 리 없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선 사후약방문과 비슷한 뜻으로 쓰지만 앞서 나왔던 亡羊補牢(망양보뢰)는 전혀 다른 뜻도 포함한다. 양을 잃은 뒤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으며 나머지를 잘 지키기 위해 방비를 더 튼튼히 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다고 ‘戰國策(전국책)’에서 깨우친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2019. 6. 9. 13:52 카테고리 없음

살계경후(殺鷄儆猴)

- 닭을 죽여 원숭이에 경고하다.

[죽일 살(殳/7) 닭 계(鳥/10) 경계할 경(亻/13) 원숭이 후(犭/9)]

본보기는 좋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남에게 설명하거나 증명하기 위한 모범은 흐뭇하다. 반면 여러 사람을 훈계하기 위해 잘못한 사람을 징계하는 본보기는 다수를 위한 것이라도 당하는 사람은 죽을 맛이다. 실제 사람의 목숨을 끊은 본보기는 성어에 제법 된다. 중국 蜀(촉)나라의 군사 諸葛亮(제갈량)이 군령을 어겨 패배를 가져온 부하의 목을 울면서 벤 泣斬馬謖(읍참마속)이 있다. 병법에 능통한 孫武(손무)가 세 번 훈령하고 다섯 번을 거듭 말해도 시시덕거린 왕의 총희를 베어 버렸다. 三令五申(삼령오신)이다. 무시무시한 조치 이후 군기가 바싹 잡힌 건 물론이다.

많이 쓰이는 一罰百戒(일벌백계)나 殺一儆百(살일경백, 儆은 경계할 경)이란 말도 같다. 한 사람을 죽여 백 사람에게 경계가 되도록 한다는 뜻이다. ‘漢書(한서)’가 설명한다. ‘하나로써 백을 경고하면 모든 사람들이 복종하게 된다. 공포감은 스스로를 새롭게 변화시킨다(以一警百 使民皆服 恐懼改行自新/ 이일경백 사민개복 공구개행자신).’ 사람이 너무 심하다면 다른 방법도 동원한다. 풀을 두들겨 뱀을 놀라게 한다는 打草驚蛇(타초경사), 산을 울려 범을 놀라게 하는 敲山震虎(고산진호, 敲는 두드릴 고) 등이 있다.

닭을 죽여(殺鷄) 원숭이에게 본보기가 되게 한다(儆猴)는 같은 뜻의 성어에는 다음 이야기가 따른다. 한 노인이 기르는 원숭이에게 곡예를 가르쳐 장터에서 돈을 벌기로 했다. 구경꾼들이 모여 들었지만 원숭이가 도통 평소 잘 하던 묘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노인은 피를 싫어한다는 원숭이의 속성을 알고 닭의 목을 쳤다. 시뻘건 피를 보고 공포에 질린 원숭이는 그제야 재주넘기를 시작했다. 본보기를 잘못 고른 성어도 있다. 하찮은 물오리를 잡으려다가 아름다운 원앙새를 놀라게 하여 달아나게 하면 어리석다. 打鴨驚鴛鴦(타압경원앙)은 경계를 주지 않고 놀람만 주었다.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하면서 얻은 교훈은 아무 짝에도 쓰지 못한다. 이끄는 사람은 효과를 봤다고 우쭐댈 때 그 조직은 곪는다. 전번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 설치로 경색됐을 때 중국이 한국기업에 보복하면서 살계란 표현을 써 반발을 샀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전에 펼쳤던 정책과 사람을 대거 바꾸면 공무원들은 바싹 엎드린다. 본보기를 잘 쓰면 희생은 적게 하고 발전을 가져 온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2019. 6. 8. 13:41 카테고리 없음

타초경사(打草驚蛇)

– 풀숲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다.

[칠 타(扌/2) 풀 초(艹/6) 놀랄 경(馬/13) 긴뱀 사(虫/5)]

풀숲을 건드려서(打草) 뱀을 놀라게 한다(驚蛇)는 뜻의 이 성어는 뜻이 다양하다. 먼저 일 처리가 매끄럽지 못해 남의 경계심만 자아낸다는 의미로 ‘긁어 부스럼 낸다’는 속담과 같다. 가만 두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을 공연히 건드려서 걱정을 일으킨 경우를 의미했다. 뱀을 잡기 위해선 먼저 풀을 두들겨 놀라게 해야 한다는 뜻도 있다. 뱀이 숨어 있을만한 곳의 주변부터 풀을 쳐가며 압박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군대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로 ‘시범 케이스’와 같다. 어느 한 쪽을 징벌해서 목표한 다른 쪽도 경계하도록 하는 것을 비유했다. 오리를 때려 원앙을 놀라게 한다는 打鴨驚鴛鴦(타압경원앙)도 같은 뜻이다.

‘三十六計(삼십육계)’는 孫子兵法(손자병법) 만큼이나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권수와 작자, 편찬 시기 등은 미상이다. 5세기 까지 구전된 내용을 가지고 明末淸初(명말청초)에 한 무명학자가 필사본으로 엮은 것이라 한다. 공격할 때의 전략을 모은 攻戰計(공전계)의 맨 처음 13계에 나오는 것이 뱀을 찾기 위해 풀밭을 두드린다는 이 계책이다. 적이 숨어있을 만한 곳을 미리 살펴 공격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변죽을 울리기만 해서 적의 정체를 드러내게 하는 이점이 있고, 아군의 전력을 일부러 노출시켜 적의 예기를 먼저 꺾는 효과도 있다.

唐(당)나라의 문신 段成式(단성식, 803~863)이 엮은 수필집 ‘酉陽雜俎(유양잡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王魯(왕로)라는 관리가 어느 지역의 수령으로 있을 때 국법을 어기고 온갖 비리로 재물을 긁어모았다. 참다못한 백성들이 연명으로 공소장을 썼다. 왕로의 측근으로 있는 主簿(주부)가 남의 재산을 횡령했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을 본 왕로는 자신도 적지 않게 남의 재물을 수탈했고, 주부의 죄목도 대부분 연관이 있었으므로 속이 뜨끔했다. 이에 왕로는 판결문에 이렇게 적었다. ‘그대는 고작 풀을 쳤을 뿐이지만 나는 벌써 놀란 뱀이 되었다(汝雖打草 吾已驚蛇/ 여수타초 오이경사).’ 자신의 비리가 드러날까 미리 겁을 먹은 것이다.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어리석게 믿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백일하에 밝혀지게 마련이다. 악의 소굴을 치기 위해선 신속하게 주변부터 압박해서 일망타진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일벌백계로 주변을 때려 중심이 기미를 알고 투항해 오면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2019. 6. 7. 08:39 카테고리 없음

삼일천하(三日天下)

- 삼일 동안의 집권, 영화를 누리는 시간은 짧다

[석 삼(一/2) 날 일(日/0) 하늘 천(大/1) 아래 하(下/0)]

대중가요의 가사로 많은 사람에 오르내렸던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있다. 빨간 꽃이 아름다움을 뽐내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며 사람이 잘 나가는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하니 사후를 대비하라는 교훈이다. 권세가 10년을 넘지 못한다는 權不十年(권불십년)도 있다. 10일에 비해 까마득하지만 천하를 보면 순간이다. 중국을 처음 통일한 秦始皇(진시황)부터 淸(청)나라 마지막 황제 溥儀(부의)까지 2130여 년간 211명의 황제 평균 재위기간이 10년 남짓이란 조사도 있어 성어가 알고 만든 듯이 잘 맞다.

한 나라가 한 정권에 속했을 때 천하라 한다. 가장 짧은 3일 동안의 집권이라 하면 조선 말기의 甲申政變(갑신정변)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1884년 급진 개화파 金玉均(김옥균), 朴泳孝(박영효) 등의 청년 지식인들이 우정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閔氏(민씨) 세력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淸(청)의 개입을 요청한 세력들에 의해 3일 만에 축출되고 개화파들이 망명했다. 仁祖(인조) 때인 1624년 반정에 공이 컸던 李适(이괄, 适은 빠를 괄)이 공신에서 밀리고 반역의 모함까지 받자 군사를 일으켜 새 왕을 세웠지만 사흘 만에 진압되고 말았다.

이렇게 보면 사흘간 단기 집권했다는 이 성어가 우리나라에서 기원했을 법 하지만 중국 검색 사이트 바이두(百度)에도 일본에서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일본 센고쿠(戰國)시대인 1582년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라는 무사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암살하고 천하를 손에 넣었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토벌되었다. 이 기간이 13일이지만 통상 삼일천하라 불린다고 한다.

이 밖에 百日天下(백일천하)는 프랑스 나폴레옹이 1815년 엘바 섬에서 빠져나와 제정을 부활하고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할 때까지 지배를 말한다. 千日(천일)로 유명한 앤 불린(Anne Boleyn)은 영국 헨리 8세와의 파란 많은 결혼생활을 끝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까지의 기간이었다.

삼일이든 백일이든 차이는 있지만 모두 짧다는 것이 공통이다. 잘 나갈 때 덕을 베풀었으면 내려와서도 존경받는데 그런 사람은 드물다. 부귀영화를 누릴 때는 끝나는 시기가 없을 듯이 주위에 거들먹거린다. 아랫사람의 신망을 잃으면 그 자리가 더 짧아지는데도 그렇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2019. 6. 6. 13:54 카테고리 없음

상풍패속(傷風敗俗)

– 부패하고 문란한 풍속

[다칠 상(亻/11) 바람 풍(風/0) 패할 패(攵/7) 풍속 속(亻/7)]

바람을 잘못 쏘여서 생기는 병이 傷風(상풍)이지만 풍속을 해치는 것도 된다. 건전하던 풍속이 쇠퇴하면 敗俗(패속)이다. 풍속을 문란하게 하거나 부패한 풍속을 이르는 이 말은 일상에 자주 쓰이는데 그 연원은 의외로 의미가 깊다. 唐(당)나라의 문장가 韓愈(한유, 768~824)가 이 말을 황제에 올리는 글에 썼다가 목숨이 달아날 뻔했기 때문이다.

한유는 친구 柳宗元(유종원)과 함께 당나라에선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 두 사람이 들어간다. 두 사람은 종래의 형식적이고 수사적인 騈文(변문, 騈은 쌍말 변)에서 성인의 도를 담은 古文(고문)을 중시해야 한다는 문체개혁을 주창하여 宋代(송대) 이후 중국 산문의 표준이 되었다. 한유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의 여러 폐단에 대해서 날카로운 의견을 논문이나 서신을 통해 피력하여 문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그에게서 비롯된 성어도 많다. 유종원의 죽음을 애도하여 落穽下石(낙정하석)의 세태를 한탄했고, 파렴치한 인간들을 蠅營狗苟(승영구구)라고 욕했다. 글 읽기를 권장하는 燈火可親(등화가친)이나 어리석은 자에게 묻는다는 問道於盲(문도어맹)도 한유의 글에서 나왔다.

한유는 당시 성행하던 불교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11대 황제 憲宗(헌종)이 한술 더 떠 釋迦牟尼(석가모니)의 유골이라며 궁내에 모시려하자 이것에 반대하여 ‘論佛骨表(논불골표)’를 올렸다. 불교는 외국에서 전래된 것으로써 그것을 믿었던 중국의 여러 왕조들은 단명하고 말았다면서 이어진다. ‘풍속을 문란하게 하는 이러한 일은 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사방으로 전파될 것입니다(傷風敗俗 傳笑四方/ 상풍패속 전소사방).’ 헌종은 글을 읽고 대로하여 그의 목을 베려고 했다. 한유는 재상 裵度(배도)의 변호로 가까스로 목숨은 건지고 지방으로 좌천됐다.

윗사람의 잘못에 대해 바른 말로 직언하기는 어렵다. 지난 정권 때 장관들의 국무회의에선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적기에 바빴다고 해서 지탄을 받았다. 새 정부에서도 새로운 정책을 펴는데 자주 저항에 직면하는 것은 전문적인 것을 밀고 가는데 대한 위험성을 따져보고 직언하는 것이 부족해서가 아닌지 우려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2019. 6. 5. 10:57 카테고리 없음

삼불여(三不如)

- 세 사람보다 못하다, 유방의 용인술

[석 삼(一/2) 아닐 불(一/3) 같을 여(女/3)]

사람은 제각기 타고난 재주가 있어 저마다의 방면에서 이름을 남긴다. 모든 면에서 통달할 수는 없기에 분야마다 특출하게 잘 하는 전문가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집단을 이끄는 리더는 부하들의 장점을 잘 파악하여 재능을 발휘하게하고 다른 사람의 능력과 융합하여 업적을 만들어낸다. 만약 부하들의 공동성과를 자신의 업적으로 가로챈다면 그 조직이 계속적으로 잘 될 리 없다. 자신의 능력이 세 사람에 미치지 못한다(三不如)는 이 성어는 부하에게 공을 돌린 중국 漢高祖(한고조)의 고사에서 나왔다.

출신도 한미하고 재주도 보잘것없는 劉邦(유방)이 떵떵거리는 집안의 천하장사 項羽(항우)와 일진일퇴 끝에 천하를 다시 통일하게 됐다. 모두의 예상을 뒤집은 결과였다. 황제에 오른 뒤 楚漢(초한)전쟁을 치르느라 고생한 신하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주연을 베풀었다. 고조는 자신이 도저히 항우에 비해 그릇이 안 되는데 황제에 오른 까닭이 무엇인지 속 시원히 알려 달라고 했다. 무신 王陵(왕릉)과 高起(고기)가 답했다. 항우는 어질고 재능 있는 자를 시기하고 공을 가로챘지만 폐하는 천하와 함께 이익을 나눠 주신 때문이라고 했다. 妬賢嫉能(투현질능)이 항우를 망쳤다는 것이다.

유방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知其一 未知其二/ 지기일 미지기이)며 설명한다. 군사를 운용하고 전략을 짜는 데는 張良(장량)만 못하고 행정과 보급은 蕭何(소하)만 못하며, 백만 대군을 통솔하고 승리하는 데는 韓信(한신)보다 못해 자신이 세 사람에 못 미친다(三不如)고 했다. 그러면서 이 세 인물을 자신이 기용했으니 范增(범증) 한 명도 거느리지 못한 항우에게 이길 수 있었다고 했다. 결국 이 漢興三傑(한흥삼걸)에 공을 돌리면서 적재적소에 잘 활용한 자신의 공도 떠올렸다. ‘史記(사기)’ 고조 本紀(본기)에 실린 이야기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많이 한다. 같이 일을 할 사람의 재능을 잘 파악하는 일이 앞서야 할 테지만 적소에 배치하여 잘 활용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연줄에 의하여 낙하산으로 온 인사는 자신의 갈 길만 찾는다. 자신이 제일 잘 안다는 무모함이 인사를 망치고 조직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2019. 6. 4. 08:10 카테고리 없음

 

순치보거(脣齒輔車)

- 입술과 이, 또는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와 같이 밀접한 관계

[입술 순(肉/7) 이 치(齒/0) 도울 보(車/7) 수레 거(車/0)]

입술과 이(齒牙/ 치아)의 관계는 서로의 도움이 필요한 밀접한 관계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성어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脣亡齒寒(순망치한)이다. 비슷한 뜻으로 輔車相依(보거상의)란 말이 있는데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를 말한다. 輔는 수레의 양쪽 가장자리에 덧대는 덧방나무란 뜻 외에 광대뼈를 가리키고, 車는 수레바퀴라는 뜻 외에 잇몸을 나타내기도 한다. 덧방나무와 바퀴거나 광대뼈와 잇몸이거나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그래서 두 성어를 합쳐 서로 돕고 의지하거나 떠날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뜻하는 말이 됐다.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북방의 강국 晉(진)나라의 獻公(헌공)은 이민족에 승리를 거두고 데려온 驪姬(여희, 驪는 검은말 려)라는 미녀에 혹해 태자 申生(신생)이 살해되고, 重耳(중이)는 망명생활을 하게 되는 악업이 있지만 文公(문공)이 천하의 패자가 되는 길을 닦았다고 평가받는다. 헌공이 주변 약소국인 虞(우)나라와 虢(괵, 虢은 나라 이름, 범발톱자국 괵)나라를 병합할 때의 일이다. 이전부터 괵을 치려했으나 그러려면 우나라를 지나야 했다. 假途滅虢(가도멸괵)의 성어는 여기서 나왔다. 이들 두 나라는 형제국으로 여기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함부로 한 곳을 침략하기가 껄끄러웠다.

대부 荀息(순식)이 꾀를 냈다. 우나라 임금은 욕심이 많아 명마와 구슬을 선물로 주면 길을 비켜줄 것이라 했다. 순식간에 마음이 돌아간 우임금에게 충직한 신하 宮之奇(궁지기)가 열을 올려가며 간했다. 괵과 우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라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 순망치한)’거나 ‘덧방나무와 바퀴는 서로 의지한다(輔車相依/ 보거상의)’란 속담과 같은 경우라며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설득해도 어리석은 우왕이 듣지 않자 궁지기는 화를 피하여 우나라를 떠났고 염려한대로 진헌공은 괵나라를 멸한 뒤에 우나라를 쳐서 병탄하고 말았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 僖公條(희공조)에 실려 전한다.

나라 사이에서도 중국이 북한을 감싸는 모습이 이를 보호하려는 속내가 들어 있다. 북한이 그렇게 말썽을 부려도 은연중 감싸는 것은 한국과 미국이 국경을 맞닿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은 기업이나 개인이나 말할 것 없지만 대립보다는 상생을 위해서는 없어서 안 될 덕목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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