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萬波息笛)
- 모든 걱정거리를 해결해 주는 피리
[일만 만(艹/9) 물결 파(氵/5) 쉴 식(心/6) 피리 적(竹/5)]
힘든 세상엔 어려움이 가득하다. 世波(세파)라 한다. 수많은 물결 萬波(만파)는 모든 어려움을 말한다. 이 모든 고난을 그만두게 하는 피리(息笛)라는 이 말은 참으로 신통력을 가진 귀한 피리이겠다. 그런 만큼 이것을 불면 적군이 물러나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고 또 폭우가 올 때는 그치게 하며 바람과 파도도 가라앉히는 효험이 있었다. 바로 統一新羅(통일신라) 때의 전설상의 피리 이야기에서 나온 것으로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해결하는 기원을 담았다.
신라 때의 왕은 시조 朴赫居世(박혁거세)와 삼국 통일의 기초를 닦은 29대 太宗武烈王(태종무열왕), 그 대업을 완수한 30대 文武王(문무왕)은 누구나 기억한다. 하지만 문무왕의 아들로 뒤를 이은 31대 神文王(신문왕, 재위 681∼692)은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진다. 그렇더라도 통일 이후 넓어진 영토를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지방행정 체제를 정비하고, 고구려와 백제 등의 유민들을 각지로 이주시키며 군사조직도 정비한 치적은 평가받는다.
온갖 고난을 가라앉히는 피리는 신문왕과 관계가 깊다. ‘三國遺事(삼국유사)’에 나오는 내용을 간추려 보자. 신문왕은 각처에 사찰을 짓는 등 불교 확장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아버지 문무왕을 기리는 感恩寺(감은사)를 동해변에 지었는데 바다 가운데서 작은 산이 생겨 그 위에 대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죽어서 海龍(해룡)이 된 문무왕과 天神(천신)이 된 金庾信(김유신)이 보낸 대나무였다. 신문왕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天尊庫(천존고)에 보관했다. ‘피리를 불면 병란도 멈추고 병이 나았으며, 가물면 비가 오고 장마가 지면 날이 개었으며,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졌다. 그래서 만파식적이라고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吹此笛 則兵退病愈 早雨雨晴 風定波平 號萬波息笛 稱爲國寶/ 취차적 즉병퇴병유 조우우청 풍정파평 호만파식적 칭위국보).’
전설상의 피리라고 해도 온갖 고난이 넘치는 현실 세계에 하나쯤 있었으면 모두들 좋아하겠다. 오랜 기간 적대적으로 대치했던 남과 북 관계에 훈풍이 불어도 어려운 살림살이는 시일이 지나야 풀릴 전망이다. 물가는 오르고 실업은 넘치고 수출은 내리막이고.. 현실이 어려우니 말이다. 만파를 잠재울 피리소리는 언제 들릴 것인지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