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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2. 09:46 카테고리 없음

병입고황(病入膏肓)

- 고칠 수 없이 깊이 든 병

[병 병(疒/5) 들 입(入/0) 기름 고(肉/10) 명치끝 황(肉/3)]

도저히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위중한 병이 들었을 때 膏肓(고황)에 들었다고 한다. 고황은 우리 몸의 심장과 횡격막 사이를 말한다. 膏(고)는 기름, 지방, 고약을 말할 때 쓰는데 고대 의학에서 심장의 아랫부분을 가리켰다고 한다. 소경 盲(맹)과 1획 차이로 잘못 읽기 쉬운 肓(황)은 횡격막의 윗부분을 나타낸다. 이 사이에 병이 나면(病入) 아무리 뛰어난 명의가 와도 고치기 어렵다는 이야기에서 성어가 유래했다. 膏肓之疾(고황지질)이나 病入骨髓(병입골수), 二竪爲烈(이수위열, 竪는 더벅머리 수)이라 해도 뜻이 같다. 여기에서 나쁜 습관이나 사상에 깊이 물들어 도저히 치유할 수 없을 때 비유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의 景公(경공)이 꿈에서 유령을 봤다. 머리를 땅에 늘어뜨린 유령이 자기 자손들을 죽였기 때문에 경공에게 벌을 주겠다고 하며 대문과 침실의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혼비백산한 경공이 그날로 병이 들어 위독한 상태가 됐다. 나라 안의 용하다는 의원은 모두 불러 치료하게 했으나 효험이 없자 이웃 秦(진)나라의 桓公(환공)에게 부탁해 명의를 모셔오게 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환공은 緩(완)이라는 최고의 명의를 보내기로 했다.

명의 완이 도착하기 전에 경공은 또 이상한 꿈을 꾸게 됐다. 병이 두 사람의 더벅머리 소년으로 변하더니 그 중 하나가 용한 의원이 온다는데 자기들을 상하게 하면 어디로 도망치지 하고 말했다. ‘다른 하나가 말했다. 횡격막 위와 명치끝 아래에 가 있으면 우리를 어떻게 하겠어(其一曰 居肓之上 膏之下 若我何/ 기일왈 거황지상 고지하 약아하)?’ 명의가 와서 진맥했는데 꼬마들의 말대로 병이 침을 놓아도 이르지 못하는 곳에 났고 약도 효험이 없으니 다스릴 수 없다고 했다. ‘左氏傳(좌씨전)’ 成公(성공) 12년조에 실려 있다.

현대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고칠 수 없는 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 덕으로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선진국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등 자랑할 만하다. 하위권에 드는 부문도 많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갈등, 남을 헐뜯는 무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무질서, 끊임없는 경쟁으로 삶의 만족도 저하 등등은 국력에 비해 까마득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 치유할 수 없을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속히 손쓰지 않으면 명의를 불러도 소용없게 될지 모른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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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1. 08:41 카테고리 없음

공의행즉치(公義行則治)

- 공적인 의리를 행하면 잘 다스려 진다.

[공평할 공(八/2) 옳을 의(羊/7) 다닐 행(行/0) 곧 즉(刂/7) 다스릴 치(氵/5)]

우리는 모두 정의가 산처럼 굳게 행해지고, 바다처럼 평등하게 대접받기를 원한다. 고대 철인은 인간이 바르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 민주주의는 생겨난다고 했다. 인간은 어떤 면에서 분명히 평등하지 않으나 자존심이나 상호 존경에 있어서는 평등해야 하고, 더군다나 법 앞에서는 평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義(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한다’고 성경에서도 말했다(구약 잠언). 이런 공정을 실천하는 최전선의 사람들이 공직자다. 공평하고 의로운 도의가 행해지면(公義行) 나라는 잘 다스려져(則治) 강대해진다는 이 말은 ‘韓非子(한비자)’에서 나왔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말기 법치주의를 주창했던 정치사상가 韓非(한비)는 飾邪(식사)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飾(식)은 본래 ‘수식하다, 꾸미다’의 의미지만 ‘경계한다’는 뜻으로 사용돼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데 사악한 행위를 멀리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중의 하나로 공사의 구분이 분명하면 군주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신하라도 맡은 일에 충실히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요약해 보자.

군주는 필히 공사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법과 제도를 분명히 해서 사사로운 온정을 없애야 한다. 또 명령은 꼭 실행하도록 해야 하며, 금지한 것은 반드시 그치도록 하는 것이 바로 公義(공의)라 하면서 이어진다. ‘사사로운 의리를 행하면 나라는 어지럽게 되지만, 공적인 의리를 행하면 잘 다스려진다. 그러므로 공과 사는 구분이 있어야 한다(私義行則亂 公義行則治 故公私有分/ 사의행즉란 공의행즉치 고공사유분).’ ‘오직 공평하면 지혜가 생기고, 오직 청렴하면 위엄이 생긴다(惟公則生明 惟廉則生威/ 유공즉생명 유렴즉생위)’는 菜根譚(채근담)의 가르침도 공직자가 공정하고 깨끗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위의 뜻과 통한다.

한국의 부패인식지수와 부패순위는 2008년을 최고로 이후 계속 하락하거나 정체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니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고 불만만 쌓인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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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29. 06:20 카테고리 없음

호고파산(好古破産)

- 옛것을 좋아하여 재산을 다 날리다.

[좋을 호(女/3) 예 고(口/2) 깨뜨릴 파(石/5) 낳을 산(生/6)]

먼저 살았던 선인들의 지혜를 소중히 여겨 오늘날 잘 받아들이면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말은 잘못이 없으니 명심해야 한다고 ‘옛말 그른 데 없다’는 속담이 이어온다. 孔子(공자)도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한다고 溫故知新(온고지신)이라 했다. 옛 문물을 소중히 여긴다는 崇古(숭고)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무조건 과거의 일만 옳다고 여기고 따라 하기만 한다면 막막하다. 옛일을 참고는 하더라도 현재를 헤쳐 나갈 때는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존재한다. ‘흘러간 물로써는 물방아를 돌릴 수가 없다’는 말과 통한다.

옛것을 무척 좋아하여 재산을 다 날린다는 이야기는 조선의 笑話集(소화집)으로 알려진 ‘蓂葉志諧(명엽지해)’에 실려 있다. 旬五志(순오지)를 쓴 중기의 문신 洪萬宗(홍만종, 1643~1725)의 저작이다. 남녀 간의 육담과 해학을 다룬 책의 집대성 古今笑叢(고금소총)에도 포함된다. 명엽은 蓂莢(명협)이란 보름 사이 한 잎씩 났다가 그 후 한 잎씩 진다는 달력 풀의 잎이다. 촌로들의 이야기를 듣고 달력 뒷면에 기록하듯이 했다는 의미라 한다.

옛날 물건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이 깨어진 표주박을 갖고 와 옛날 중국의 은자 許由(허유)가 귀를 씻은 것이라 하니 백금을 주고 샀다. 너덜너덜한 방석을 갖고 온 사람이 공자가 杏亶(행단)에서 강의할 때 앉은 자리라 하자 또 백금을 주고 샀다. 또 한 사람이 대지팡이를 後漢(후한)의 기인 費長房(비장방)이 하늘을 날 때 썼던 지팡이라 하자 거금을 주고 샀다. 집안의 재물이 바닥났지만 얻은 것이 많다며 표주박과 지팡이를 짚고 자리를 끼고 거리로 나섰다. ‘사람들이 모두 입을 막고 웃었는데 옛것을 좋아하다 집안을 망친 것을 비웃은 것이다(人皆掩口 笑其好古而破産也/ 인개엄구 소기호고이파산야).’

옛날의 가르침과 전통을 이어나가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파산할 정도로 현실을 무시하고 옛것에 빠진다면 옳은 일이 아니다. 이전부터 내려오는 것을 새롭게 해 본다고 전면 폐기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행위다. 어느 것이나 모두의 지혜를 모아 최선의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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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26. 06:36 카테고리 없음

양웅불구립(兩雄不俱立)

– 두 영웅은 함께 설 수 없다.

[두 량(入/6) 수컷 웅(隹/4) 아닐 불(一/3) 함께 구(亻/8) 설 립(立/0)]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 영웅이다. 오늘날 영웅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이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될 수 없는 일을 바라고만 있는 사람이 범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옛날의 영웅이라 함은 힘은 산을 뽑고 기상은 하늘을 덮는다(力拔山氣蓋世/ 역발산기개세)란 표현과 같이 비범했다. 項羽(항우)를 영웅으로 잘 그려낸 말이다. 이 영웅이 두 사람이 되면(兩雄) 함께 설 수 없다(不俱立). 이들은 반드시 싸워 어느 한 쪽이 패배하거나 둘 다 무너진다는 뜻이다. 항우의 막강한 힘이 결국 劉邦(유방)에 무릎 꿇게 되는 것도 두 영웅을 받아들이지 않는 하늘의 뜻에서 나왔다.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말기 천하 통일했던 秦(진)나라가 쇠퇴하고 楚漢(초한)을 이끌던 항우와 유방이 양대 세력으로 각축을 벌일 때였다. 酈食其(역이기, 酈은 땅이름 역, 食은 밥 식, 사람이름 이)란 사람은 사람이 곧고 글을 즐겨 읽었지만 집안이 가난하여 糊口之策(호구지책)으로 유방의 휘하에 들기 위해 찾아갔다. 유방은 선비를 업신여겼기 때문에 역이기가 자신을 고양의 술꾼(高陽酒徒/ 고양주도)라 소개하고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방이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두 여인에게 발을 씻기며 뒤돌아보지도 않는 것을 꾸짖어 선비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그러자 얼른 의관을 바로 하고 역이기를 상좌로 모신 뒤 의견을 들었다.

유방이 항우와의 싸움에서 형세가 불리해지자 일부 지역을 포기하고 병력을 몇 군데로 집결시켜 방어할 계획을 세웠다. 이 때 역이기가 나서 하늘의 명을 모르는 자는 왕업을 성취할 수 없다며 간언한다. 한 시대에 두 영웅은 양립할 수 없으니(且兩雄不俱立/ 차양웅불구립) 항우와 계속 대치만 해서는 민심이 안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유방은 제안을 받아들여 초나라에 공세로 나갔고 역이기는 齊(제)나라에 파견되어 변설로 항복을 받아내는 큰 공을 세웠다. ‘史記(사기)’ 酈生陸賈(역생육가) 열전에 실린 이야기다.

오늘날 사회에서의 영웅은 두 사람이 아니라 많을수록 좋다. 스포츠에서 우승자는 수시로 바뀌고 공동 우승자도 나온다. 치열한 경쟁을 하는 기업에서도 맞수가 있으면 더욱 자신을 발전시키려 노력한다. 옛날같이 상대를 멸망시켜야 할 것이 아니라 상생을 해야 더욱 큰 존재가 되는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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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25. 06:27 카테고리 없음

백안시(白眼視)

- 남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태도로 흘겨봄

[흰 백(白/0) 눈 안(目/6) 볼 시(見/5)]

눈은 보배다. ‘몸이 열이면 눈이 구할’이라는 말이 전하듯 눈이 잘 보이는 사람은 느끼지 못하지만 잠시만 불편해도 그 중요성을 절감한다. 오감 중에서도 視覺(시각)을 앞세우는 것은 보는 것으로 모든 것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 했다. 온화한 눈빛의 사람에겐 절로 호감이 가고, 미인을 나타내는 성어 중에 눈이 아름다운 明眸皓齒(명모호치, 眸는 눈동자 모), 美目盼兮(미목반혜, 盼은 눈예쁠 반) 등의 말이 따로 있다. 하지만 해를 끼치는 상대에게는 눈이 찌푸려져 쌍심지를 켠다.

상대하기 싫은 위인에게는 흰 눈자위로 흘겨보거나(白眼視) 반대로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는 푸른 눈자위를 나타내는 등 자유자재의 사람이 있었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이후 魏晉(위진)의 혼란기에 老莊(노장)의 철학에 심취했던 竹林七賢(죽림칠현) 중의 阮籍(완적, 210~263)이 그 주인공이다. 그도 처음에는 관료로 진출했는데 정변으로 권세를 차지하는 자가 무상하게 바뀌자 환멸을 느껴 산야에 묻혀 살았다. 어머니 장례 때도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칠현 중의 한 사람인 嵇康(혜강, 嵇는 산이름 혜)의 형에게도 무례했다. 唐(당)의 房玄齡(방현령) 등이 엮은 ‘晉書(진서)’의 내용을 보자.

‘완적은 예교에 얽매이지 않고 능히 눈동자를 굴려 흰자위를 드러나게 하거나 호의의 푸른빛을 나타낼 수 있었다. 세속의 예의범절에 얽매인 선비를 보면 흰자위를 드러내 흘겨보며 대했다(阮籍不拘禮敎 能爲靑白眼 見俗禮之士 以白眼對之/ 완적불구예교 능위청백안 견속례지사 이백안대지).’ 혜강의 형 嵇喜(혜희)가 찾아왔는데도 완적이 흰자위를 드러내자 그만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 소식을 듣고 혜강이 술과 거문고를 갖고 찾아왔을 때는 반색을 하며 푸른 눈자위를 보였다. 여기에서 싫은 사람에게는 무시해서 흘겨보거나 냉랭하게 대할 때 흰자위로 본다는 말이 나왔다.

이렇게 흘긴 눈으로 사람을 대할 때 상대방도 따뜻한 시선을 보낼 리가 없다. 好惡(호오)가 분명한 것이 장점일수도 있지만 매사에 이렇게 대하다가는 적을 양산한다. 또 이렇게 피아를 갈라놓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 사회가 조용할 때가 없다. ‘시선은 칼’이란 서양의 격언보다 더 무서웠던 전직 대통령의 레이저 광선은 한 번 맞은 장관까지도 주눅 들었다. 靑眼(청안)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2019. 7. 24. 08:57 카테고리 없음

중반친리(衆叛親離)

- 군중이 반대하고 친근한 사람들이 떠나다.

[무리 중(血-6) 배반할 반(又-7) 친할 친(見-9) 떠날 리(隹-11)]

고독을 즐긴다는 사람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제일 굳세게 사는 자는 혼자서 사는 사람이라고 한 입센의 말을 신봉해서일까. 하지만 강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이웃과 가까이 지내고, 직장 동료와 친하게 지내며 취미가 비슷한 사람과 어울린다.

대중의 주목을 받고 큰 인기를 누리다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면 고통이 더 심할 것이다. 뭇 백성들이 등을 돌리고(衆叛) 친근한 사람마저 떨어져 나간다(親離)는 이 성어가 그런 경우를 가리킨다. 기반이 무너지고 고립무원인 상태에 빠졌을 때 사용한다.

春秋三傳(춘추삼전) 중에서 左丘明(좌구명)이 쓴 '左氏傳(좌씨전)'은 실증적 해석을 중심으로 했기에 잘 알려져 있다. 左傳(좌전)이라고도 하는 이 책 隱公(은공)조에 魯(노)나라 대부 衆仲(중중)이 한 말로 나온다. 春秋時代(춘추시대) 周(주)나라 중기 桓王(환왕) 때의 일이다.

제후국 衛(위)의 莊公(장공)은 아들이 없다가 후궁에서 난 桓公(환공)을 후계로 세웠다. 물론 五霸(오패)의 한 사람인 齊(제)의 환공과는 다른 사람이다. 장공은 환공을 후계로 삼고도 천첩에게서 얻은 州吁(주우, 吁는 탄식할 우)를 총애했다.

충신 石碏(석작)이 포악한 주우를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진언했지만 장공이 그대로 두다 후일 환공이 시해되는 화를 키운다. 군주를 시해한 주우가 성공할까라고 한 은공의 물음에 중중이 대답한다. '무력을 믿으면 대중이 떨어져 나가고, 잔인한 짓을 하면 친한 사람들을 잃게 됩니다.

대중이 떠나가고 측근들이 떠나가 버리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阻兵無衆 安忍無親 衆叛親離 難以濟矣/ 조병무중 안인무친 중반친리 난이제의).' 과연 주우는 석작이 이웃 나라의 도움을 받아 세운 계략에 걸려 참살된다. 주우를 도와 반역에 가담한 석작의 아들도 가차 없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2019. 7. 22. 05:30 카테고리 없음

박이부정(博而不精)

- 널리 알지만 정밀하지 못함

[넓을 박(十/10) 말이을 이(而/0) 아닐 불, 부(一/3) 정할 정(米/8)]

아는 것이 힘이라 했으니 널리 알수록 모든 일에 유리할 터다. 두루 알지만(博而) 세세한 분야까지는 정밀하게 알지 못한다(不精)는 것이 이 성어다. 널리 아는 사람이 博士(박사)의 본뜻이지만 실제는 어느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들어 많이 아는 사람이다. 博學多識(박학다식)인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분야에 모두 통달했다고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럴 때는 精而不博(정이불박)이 된다. 老子(노자)가 이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고, 모든 일에 다 통한다는 사람은 도리어 아무 것도 모른다(知者不博 博者不知/ 지자불박 박자부지).’ 많이 알고도 요령이 부족하면 博而寡要(박이과요)라 한다.

後漢(후한) 초기의 유명한 경학자 鄭衆(정중)은 유학의 경전을 깊이 연구하여 명성이 자자했다. 光武帝(광무제) 때 태자가 그를 존경하여 가까이 하려 했으나 사사로이 빈객과 내왕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2대 明帝(명제) 때는 匈奴(흉노)에 사신을 갔다가 배례를 않는다고 억류되었어도 굽히지 않았다. 이런 강직함으로 모두의 존경을 받았고 관직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경서 연구에 몰두했다. 젊은 사람들에게 여러 경전을 가르치면서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대한 주석을 편찬했다.

같은 시대에 유명한 학자인 賈逵(가규, 逵는 길거리 규)도 주석을 가한 책을 완성하자 두 종류의 주석서가 화제가 되어 빠르게 전파되었다. 지조 없이 옮겨 다녔지만 이름 높은 유학자로 많은 제자를 길러낸 馬融(마융)이 자신도 여러 경서를 주석했고 左傳(좌전)도 준비하고 있었다. 먼저 나온 정중과 가규의 저작을 읽은 마융이 이렇게 평가했다. ‘가규의 주석은 세밀하나 넓지 못하고, 정중의 주석은 넓으나 정밀하지 못하다(賈君精而不博 鄭君博而不精/ 가군정이불박 정군박이부정).’ 마융은 이 두 책을 합치면 정밀하고 넓게 되니 다시 책을 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후한서’ 마융전에 실려 있다.

폭넓게 지식을 넓혀야 한다며 책을 읽을 때는 많아야한다고 汗牛充棟(한우충동)을 권했다. 소가 옮길 때 땀을 흘리고 대청에 가득하도록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 많은 책이 있다 해도 훑기만 해서는 깊이 알 수가 없다. 어느 분야에 깊이 아는 박사가 아무 곳이나 지식을 판다고 해서 군사정권 때 ‘박사 위에 육사, 육사 위에 여사‘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많은 지식도 물론 중요하지만 학문을 실천하는데 어떤 길이 바른가도 잘 판단해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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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18. 06:38 카테고리 없음

불효자오(不孝者五)

– 다섯 가지 불효

[아닐 불(一/3) 효도 효(子/4) 놈 자(耂/5) 다섯 오(二/2)]

인간의 도리라며 예부터 중시하고, 고금의 효자를 기리며 상찬해도 불효는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악독한 위인이라도 부모 앞에서는 말을 잘 따르는 순둥이가 된다. 그래서 남이 볼 때는 어버이를 효성스럽게 잘 섬기지 않아 손가락질 받는 불효자라도 부모는 감싸고 싶어 한다. 또 모두들 욕하는 부모님일지라도 자식이 정성스럽게 섬기면 효일 수 있다. 이처럼 상대적인 불효에 대해 명쾌하게 규정한 글이 있다. 세상에서 하지 않아야 할 다섯 가지 불효를 孟子(맹자)가 설명한다. ‘맹자’ 離婁(이루) 하편에 나온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에 匡章(광장)이란 장군이 있었다. 秦(진)나라가 공격해 왔을 때 양국의 깃발을 섞는 전술로 대승을 거두었고, 燕(연)나라에 내란이 일어난 틈을 타 수도를 함락시키는 등 공이 컸다. 그런데 그는 온 나라 사람들이 불효한 자라고 욕을 듣고 있었다. 광장의 어머니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의 아버지가 살해한 뒤 마구간에 파묻었다. 광장은 여러 번 이장을 요구했으나 부친은 죽을 때까지 끝내 듣지 않았다. 그 후 부모에 죄를 지은 몸으로 처자의 봉양을 받을 수 없다며 처를 내보내고 자식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맹자는 이런 광장과 교유하고 예를 갖춰 대하므로 제자 公都子(공도자)가 어떤 연유인지 물었다. 세상에서 불효라고 말하는 것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世俗所謂不孝者五/ 세속소위불효자오)며 설명한다. 첫째 제 몸을 게을리 놀려 부모 봉양을 하지 않는 것(惰其四支/ 타기사지), 장기나 바둑 같은 노름에 빠지는 것(博奕好飮酒/ 박혁호음주),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식만 편애하는 것(好財貨 私妻子/ 호재화 사처자), 제 욕심만 차려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從耳目之欲 以爲父母戮/ 종이목지욕 이위부모륙), 만용을 일삼아 사납게 싸워 부모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好勇鬪很 以危父母/ 호용투흔 이위부모)이 그것이다. 광장은 한 가지도 해당되지 않으니 불효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很은 말다툼할 흔.

맹자는 舜(순)임금의 부친이 만약 살인을 했더라도 아버지를 업고 도망쳐 조용히 살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렇게 부모를 감싸는 것이 옳다고 말하지만 모두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임금에게도 잘못을 간해야 하는데 잘못을 법에 알리지는 못해도 자수 등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다섯 가지 불효를 않더라도 효도하기는 이처럼 어렵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2019. 7. 17. 05:11 카테고리 없음

묵적지수(墨翟之守)

- 묵적의 지킴, 옛날 생각이나 습관을 굳게 지킴

[먹 묵(土/12) 꿩 적(羽/8) 갈 지(丿/3) 지킬 수(宀/3)]

다른 사람과 한 약속은 잘 지켜야 믿음을 얻는다. 하지만 약속은 지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는 최상의 방법은 결코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란 옹고집도 있고 ‘고리 백정 낼 모레’라는 속담처럼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을 욕하기도 한다. 老子(노자)가 숭낙을 쉽게 하면 믿음성이 적다고 한 輕諾寡信(경낙과신)이다. 그렇다고 한 번 약속이라며 주위상황이 바뀐 것도 무시하고 우직하게 지키려 하는 것도 어리석다. 부친의 도둑질을 증언했던 直躬(직궁)이나 여인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려다 물에 빠져 죽은 尾生(미생)의 행위는 본받을 일이 되지 못한다.

墨子(묵자)는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로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이롭게 하여야 한다는 兼愛說(겸애설)을 주장했다. 본명이 墨翟(묵적)인 그가 楚(초)나라의 공격을 잘 막아 宋(송)을 지켜냈다(之守)는 이 말은 옛날 습관이나 자기의 생각을 굳게 지킨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의미가 점차 넓어져 나라를 잘 지키는 훌륭한 수비를 일컫기도 하고, 낡은 관습과 태도를 끝내 견지하는 옹고집, 보수적인 태도를 가리키기도 한다. 옛 방식을 고집하는 膠柱鼓瑟(교주고슬)이나 守株待兎(수주대토), 抱柱之信(포주지신)과 통하는 셈이다. ‘묵자’ 公輸盤(공수반)편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魯班(노반)이라고도 불리는 공수반은 온갖 기계를 잘 만드는 명장이었다. 그가 초나라에 와서 송나라를 치기 위한 전차와 성을 넘나드는 구름사다리 雲梯(운제)를 만들었다. 묵자가 이 소식을 듣고 대국이 조그만 나라를 치지 말라고 초나라 왕과 공수반을 설득했다. 그러면서 공수반의 공격을 막아 보겠다고 했다. 초왕 앞에서 모형 공방전이 벌어졌다. ‘공수반은 모든 구름사다리와 기구를 총동원했지만 묵자는 모두 막아내고도 여유가 있었다(公輸盤之攻械盡 子墨子之守圉有餘/ 공수반지공계진 자묵자지수어유여).’ 圉는 마부, 옥이란 뜻 외에 막는다는 뜻이다. 이것으로 묵자는 송나라를 치지 않겠다는 초왕의 약속을 받아냈다.

墨守(묵수)라고 줄여서 말하기도 하는 이 성어는 온갖 방책을 써서 나라를 지킨다는 뜻도, 융통성 없이 약속을 지키려 한다는 뜻도 국방을 위해서는 모두 합당한 말이다. 온갖 미사여구와 속임수가 판치는 국가 간의 약속은 무력이 강한 나라에 의해 언제나 깨질 수가 있으므로 항상 대비하면서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한다. 남북의 협약을 지키지 않는 북한이나 강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2019. 7. 16. 06:25 카테고리 없음

타산지석(他山之石)

- 다른 산의 돌, 좋지 않은 돌로 도움 되는 일을 하다.

[다를 타(亻/3) 메 산(山/0) 갈 지(丿/3) 돌 석(石/0)]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닥쳤을 때 흔히 선인들의 지혜를 구한다. 그들은 앞선 경험으로 해결책을 제시해 주므로 좋은 점을 본받을 수 있다. 반면 옳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 나쁜 점을 보고 교훈을 삼는다는 말이 다른 산의 나쁜 돌이라도 나의 옥을 가는 데 도움 되는 돌이 될 수 있다는 이 성어다. 본이 되지 않은 남의 말이나 행동도 자신의 지식과 인격을 수양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말한다. 反面敎師(반면교사)와 똑 같은 말이다.

약 3000년 전부터 중국에서 전해지던 시를 수록한 ‘詩經(시경)’에 이 말이 처음 나온다. 小雅篇(소아편) 鶴鳴(학명)의 두 구절만 떼어보면 이렇다. ‘다른 산에 있는 돌이라도 여기 돌을 가는 숫돌이 된다네, 다른 산에 있는 돌이라도 여기 옥을 가는데 쓸 수 있다네(他山之石 可以爲錯, 他山之石 可以攻玉/ 타산지석 가이위착 타산지석 가이공옥).’ 錯은 섞일 착, 또는 맷돌 착. 여기서 돌은 소인에 비유하고 옥은 군자를 가리켰다. 군자도 소인에 의해 수양과 학덕을 쌓아 나갈 수 있음을 가르친다. 대수롭지 않은 물건도 중요한 일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으며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後漢(후한) 말기의 유학자 王符(왕부)도 이런 말을 남겼다. ‘돌로써 옥을 갈고 소금으로 금을 닦는데 물건에는 천한 것으로 귀중한 것을 다스리며 더러운 것으로써 좋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且攻玉以石 洗金以鹽 物固有以賤理貴 以醜化好者矣/ 차공옥이석 세금이염 물고유이천리귀 이추화호자의).’ 난세에 처하여 세속에 영합하지 않고 문란한 정치를 비판하여 쓴 책 ‘潛夫論(잠부론)’에서다.

이와 같이 他山之石 可以攻玉은 처음에는 옥을 잘라 갈고 다듬어 닦는다는 切磋琢磨(절차탁마)와 함께 예부터 수양을 위한 명구로 많이 사용돼왔지만 후세로 가면서 본받아선 안 되는 것으로 의미가 변했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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