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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14. 06:27 카테고리 없음

만파식적(萬波息笛)

- 모든 걱정거리를 해결해 주는 피리

[일만 만(艹/9) 물결 파(氵/5) 쉴 식(心/6) 피리 적(竹/5)]

힘든 세상엔 어려움이 가득하다. 世波(세파)라 한다. 수많은 물결 萬波(만파)는 모든 어려움을 말한다. 이 모든 고난을 그만두게 하는 피리(息笛)라는 이 말은 참으로 신통력을 가진 귀한 피리이겠다. 그런 만큼 이것을 불면 적군이 물러나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고 또 폭우가 올 때는 그치게 하며 바람과 파도도 가라앉히는 효험이 있었다. 바로 統一新羅(통일신라) 때의 전설상의 피리 이야기에서 나온 것으로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해결하는 기원을 담았다.

신라 때의 왕은 시조 朴赫居世(박혁거세)와 삼국 통일의 기초를 닦은 29대 太宗武烈王(태종무열왕), 그 대업을 완수한 30대 文武王(문무왕)은 누구나 기억한다. 하지만 문무왕의 아들로 뒤를 이은 31대 神文王(신문왕, 재위 681∼692)은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진다. 그렇더라도 통일 이후 넓어진 영토를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지방행정 체제를 정비하고, 고구려와 백제 등의 유민들을 각지로 이주시키며 군사조직도 정비한 치적은 평가받는다.

온갖 고난을 가라앉히는 피리는 신문왕과 관계가 깊다. ‘三國遺事(삼국유사)’에 나오는 내용을 간추려 보자. 신문왕은 각처에 사찰을 짓는 등 불교 확장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아버지 문무왕을 기리는 感恩寺(감은사)를 동해변에 지었는데 바다 가운데서 작은 산이 생겨 그 위에 대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죽어서 海龍(해룡)이 된 문무왕과 天神(천신)이 된 金庾信(김유신)이 보낸 대나무였다. 신문왕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天尊庫(천존고)에 보관했다. ‘피리를 불면 병란도 멈추고 병이 나았으며, 가물면 비가 오고 장마가 지면 날이 개었으며,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졌다. 그래서 만파식적이라고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吹此笛 則兵退病愈 早雨雨晴 風定波平 號萬波息笛 稱爲國寶/ 취차적 즉병퇴병유 조우우청 풍정파평 호만파식적 칭위국보).’

전설상의 피리라고 해도 온갖 고난이 넘치는 현실 세계에 하나쯤 있었으면 모두들 좋아하겠다. 오랜 기간 적대적으로 대치했던 남과 북 관계에 훈풍이 불어도 어려운 살림살이는 시일이 지나야 풀릴 전망이다. 물가는 오르고 실업은 넘치고 수출은 내리막이고.. 현실이 어려우니 말이다. 만파를 잠재울 피리소리는 언제 들릴 것인지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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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13. 06:27 카테고리 없음

운근성풍(運斤成風)

- 도끼를 움직여 바람소리를 내다, 최고 경지의 기술자

[옮길 운(辶/9) 근 근(斤/0) 이룰 성(戈/3) 바람 풍(風/0)]

기술이나 능력이 경지에 오른 사람은 도구나 조건을 탓하지 않는다. 기술의 최고 달인이라 할 庖丁(포정, 庖는 부엌 포)은 소를 잡아 뼈와 살을 해체하는 솜씨가 신기에 가까우면서도 19년 동안 칼을 갈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된 데는 마음의 눈으로 소의 살과 뼈, 근육 사이의 틈새를 보고 그 사이로 칼을 지나가게 하는데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한 번도 실수로 살이나 뼈를 다치게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우주의 본질을 아기자기하게 우화를 통해 비유한 莊子(장자)의 庖丁解牛(포정해우)에 나오는 이야기다.

포정과 마찬가지로 과장이 섞인 또 하나의 재주꾼이 역시 ‘장자’의 雜篇(잡편) 徐無鬼(서무귀) 편에 등장하는 匠石(장석)이란 사람이다. 그는 도끼를 움직여(運斤) 바람소리 나도록 휘둘러도(成風) 상대방 코끝에 바른 백토만 떨어뜨릴 정도의 경지를 지녔다.

장자가 생전 논쟁을 즐겼던 魏(위)나라의 사상가 惠子(혜자)의 무덤가를 지나면서 제자들에게 말한 데서 나왔다. 내용을 인용해 보자. ‘영 지방에 어떤 흙 장인이 자기 코끝에 파리 날개만큼 얇게 백토를 발라놓고 장석에게 그것을 깎아내게 했다. 장석이 도끼를 휘두르자 바람이 휙휙 났지만 장인은 그저 듣기만 할뿐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郢人堊漫其鼻端 若蠅翼 使匠石斲之 匠石運斤成風 聽而斲之/ 영인악만기비단 약승익 사장석착지 장석운근성풍 청이착지).’ 郢은 楚(초)나라서울 영, 堊은 흰흙 악, 斲은 깎을 착. 흙이 모두 깎여 나갔는데도 코는 다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장석은 뒷날 宋(송)나라 元君(원군)에 초청되어 시범을 요청받았으나 상대가 오래 전에 죽었다며 할 수 없다 했다. 장자는 재상도 지낸 혜자와 각별한 사이면서도 서로 비판하면서 지냈는데 죽은 뒤로는 이제 팔씨름하고 지낼 친구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神工鬼斧(신공귀부), 郢匠運斧(영장운부), 匠石運斤(장석운근)이라 해도 뜻은 같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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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12. 06:36 카테고리 없음

매육매장(買肉埋墻

- 사 온 고기를 담 밑에 묻다, 남을 더 생각하다.

[살 매(見/5) 고기 육(肉/0) 묻을 매(土/7) 담 장(土/13)]

푸줏간에서 사 온 고기(買肉)를 담장 밑에 묻는다(埋墻)면 모두 어리석은 행동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사정을 알고 보면 모두 감사할 일이다. ‘검은 고기 맛 좋다 한다’는 속담이 있다. 고기의 겉모양만 보고 맛이 있는지 독이 들었는지 내용을 속단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이 말대로 사 온 고기를 잘 살펴보고 해로운 것이 들어 있는 것을 알고선 사 왔던 것뿐만 아니라 가게의 고기를 몽땅 사서 담장에 묻었다면 결코 어리석다고 못한다. 더구나 집이 아주 가난하여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理埋毒肉(이매독육)이라고도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선 宣祖(선조) 때에 정승을 지낸 洪瑞鳳(홍서봉, 1572~1645)의 모친이다. 호가 鶴谷(학곡)인 홍서봉은 仁祖反正(인조반정)에 참가한 후로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했고, 丙子胡亂(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崔鳴吉(최명길)과 함께 화의를 주장한 사람이다. 홍서봉이 어릴 때 집이 매우 가난하여 ‘거친 밥과 나물국도 자주 거를 때가 많았다(疏食菜羹 每多空缺/ 소사채갱 매다공결). 먹을 食(식)은 이 때는 ’밥 사’의 뜻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루는 여종을 보내 고기를 사오게 했다. 고기의 빛깔을 살펴보니 독이 들어있는 것 같아 정육점에 얼마나 더 있더냐고 물었다. 몇 덩이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머리 장식을 팔아 돈을 마련했다.

그리고선 ‘여종을 시켜 고기를 모두 사오게 하고선 담장 밑에 묻었다(使婢盡買其肉 而埋于墻下/ 사비진매기육 이매우장하)’. 홍서봉의 이런 행동은 다른 사람들이 그곳서 고기를 사서 먹은 뒤 병이 날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훗날 어머니의 이런 마음씨가 천지신명과 통하여 자손들이 반드시 번창할 것이라고 홍서봉이 말했다. 高麗(고려) 이후의 저명인사를 여러 책에서 골라 그들의 훌륭한 말과 선행을 엮은 ‘海東續小學(해동속소학)’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朴在馨(박재형)의 저작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불량식품을 판 정육점은 당장 고발당하고 상응한 벌을 받을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악덕 상인들이 근절된다. 홍서봉의 어머니는 모든 것이 어려울 때 조그만 고깃점도 어려울 테고 자신도 모르게 실수를 했을지도 모르는 그 주인을 망하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 틀림없다. 자신에게는 손톱 끝만큼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 하고, 없는 일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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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11. 11:33 카테고리 없음

백리부미(百里負米)

– 쌀을 지고 백 리를 가다, 가난해도 부모를 잘 봉양하다.

[일백 백(白/1) 마을 리(里/0) 질 부(貝/2) 쌀 미(米/0)]

부모를 잘 섬기는 효도는 인간의 도리라며 예부터 중시해왔고 수많은 성어도 남겼다. 孝(효)란 글자를 보더라도 아들(子)이 노인(老의 획을 줄인 耂)를 업고 있는 모양이다. 이 근본이 잘 된 사람이 인간관계도 좋고, 임금도 잘 섬긴다. 孝經(효경)에 나오는 말을 보자. ‘어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않고, 어버이를 존경하는 사람은 남에게 오만하지 않다(愛親者 不敢惡於人 敬親者 不敢慢於人/ 애친자 불감오어인 경친자 불감만어인).’ 모두들 효를 기렸기 때문에 전해오는 효자도 많다. 元(원) 나라 때 郭居敬(곽거경)이 쓴 二十四孝(이십사효)엔 王祥(왕상), 孟宗(맹종), 老萊子(노래자), 陸績(육적) 등이 등장한다.

孔子(공자)의 제자 중에 효를 실천한 사람으로 효경을 저술했다고 하는 曾子(증자)를 첫 손에 꼽는다. 의외로 子路(자로, 기원전 543~480)도 그 안에 들어간다. 제자 중에서 가장 연장이었던 자로는 무뢰한 출신으로 성격이 강직했는데 공자의 훈계 이후 헌신적으로 스승을 받들었다. 이름이 仲由(중유)인 자로는 魯(노)나라에 있을 때 집안이 아주 가난하여 조악한 음식을 먹으면서 자랐다. 하지만 조그만 벼슬자리를 얻게 되자 봉록으로 받은 쌀을 지고 백여 리나 떨어진 집에 가 부모님을 봉양했다는 효자였다.

자로가 부모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공자에게 토로한 내용이 ‘孔子家語(공자가어)’에 실려 있다. 공자와 문인들이 주고받은 논의를 王肅(왕숙)이 편찬한 책인데 致思(치사)편을 보자. 집이 가난한 시절 부모님을 섬길 때는 봉록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았다며 이어진다. ‘항상 명아주 잎과 콩잎과 같은 나쁜 음식을 대접했고, 부모께 직접 쌀을 백 리 밖에서 져 날랐습니다(常食藜藿之實 爲親負米百里之外/ 상식려곽지실 위친부미백리지외).’ 藜는 명아주 려, 藿은 콩잎 곽.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높은 관직에 올랐을 때 자로는 호화로운 음식을 앞에 두고도 옛날 쌀을 지고 가 봉양했을 때가 행복했다고 탄식했다.

‘부모가 온 효자가 되어야 자식이 반 효자’란 말이 있다. 요즘은 핵가족이라 부모가 효도하는 것을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노인을 폄하하는 인터넷 댓글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은 것이 노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명이 늘어 자리를 차지하는 면이 있을지라도 근본원인이 거기에 있지 않고, 앞 세대부터 이어 온 나라라는 인식을 갖고 경로의 정신을 가졌으면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2019. 8. 10. 07:01 카테고리 없음

번문욕례(繁文縟禮)

- 번거롭고 까다로운 규칙과 예절

[번성할 번(糸/11) 글월 문(文/0) 화문놓을 욕(糸/10) 예도 례(示/13)]

복잡한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들은 다른 일이 닥쳤을 때 간단하게 이해하는 것을 바란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 아픈 일이 많은데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무시하거나 대충 처리한다. 서양 철인 세네카는 단순함의 중요성을 말했다. ‘모든 기교적인 것, 주의를 끄는 것은 피해야 한다. 단순만큼 사람으로 하여금 친근하게 하는 것은 따로 없다.’ 또 있다. ‘참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항상 단순하다. 왜냐하면 쓸데없는 일을 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다.

단순함을 찾는 사람에게 생각도 그러한데 번거롭고 까다로운 규칙(繁文)과 꾸미기만 한 듯이 세세하게 보이는 예절(縟禮)은 더 거리감을 느낀다. 번잡스런 煩文(번문)이라 해도 같고 줄여서 繁縟(번욕). 繁忙(번망)으로도 쓴다. 금침이나 자리에 꽃무늬 놓는 것이 縟(욕)인데 역시 번잡하다.

꼭 이 말이 어디에서 처음 사용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중국 西周(서주)시대 왕의 직계 혈통과 동맹관계에 있던 제후 사이의 호혜적인 관계에 근거하여 복잡한 규정이 있었다고 본다. ‘史記(사기)’ 魯周公(노주공) 세가에 예가 있다. 주공의 아들 伯禽(백금)이 魯(노)땅의 봉토를 받은 지 삼년 만에 상황을 보고했다. 姜太公(강태공)은 齊(제)에 간 지 다섯 달 만에 보고했다. 주공은 정치가 쉽고 백성들에게 친근해야 따르게 된다며 앞으로 노나라가 제나라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한탄했다.

우리나라에서 이 말은 상례나 제례 등의 규정에 대해 ‘허례다, 지켜야 한다’며 논쟁을 해 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절차, 양식 등을 요구하는 관청에서의 사무가 형식적이고 너무 까다롭다고 말할 때 많이 쓴다. 민원인의 입장에선 전혀 필요하지 않을듯한데 요구하여 비용을 낭비하고 부패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근거가 있어야 하고 책임질 일이 있을 때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는 간단하고 쉽게 행해지지 않으면 국민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다. 漢高祖(한고조)가 통일한 뒤 約法三章(약법삼장)으로 민심을 잡았다. 법이 성기면 큰 죄를 지은 사람이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며 조밀하게 규정하면 되레 피라미들만 생활하기 불편해진다. 도덕으로 충분히 규제할 수도 있는 것을 제정했다가 유명무실한 법은 또 얼마나 많을까.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2019. 8. 9. 06:23 카테고리 없음

살처구장(殺妻求將)

– 부인을 죽여 장군이 되다, 목표를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다.

[죽일 살(殳/7) 아내 처(女/5) 구할 구(氺/2) 장수 장(寸/8)]

큰일을 성취하려면 다른 일을 생각지 말아야 한다. 큰일만이 아니라 자신이 처음 결심한 일을 해나갈 때도 잡념에 마음이 끌리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百濟(백제) 말기의 階伯(계백) 장군은 羅唐(나당) 연합군을 물리치기 위해 황산벌로 출전할 때 처자를 죽였다. 5000의 군사로 5만 대군을 막기 위해 나서면서 나라를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적의 노비가 되는 것보다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늘날 생각하면 가혹한 처사임이 분명하지만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도 명백하다.

듣기만 해도 끔찍하게 부인을 죽여(殺妻) 장군 자리를 구한다(求將)는 이 말은 명성이나 이익을 얻기 위하여 잔인한 수단도 망설이지 않는 것을 비유한다. 吳子(오자)라는 병서의 원저자로 보는 吳起(오기)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싸움터에서 부하의 상처에 난 종기에 고름까지 빨아주는 장수, 吮疽之仁(연저지인, 吮은 빨 연)의 그 사람인데 참으로 집념이 무섭다. 春秋時代(춘추시대) 衛(위)나라 사람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재산을 탕진했다. 자신을 비웃는 자들을 30명이나 죽이고 도망하면서 어머니께 출세하기 전에는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魯(노)나라에 가서 曾子(증자)에게 배우고도 어머니 초상 때 가지 않았다고 배척당했다.

그 즈음 齊(제)나라의 대부가 열심히 하는 오기의 모습을 보고 큰 인물이 될 것이라며 딸과 결혼을 시켰다. 제나라가 침입하자 병법에 능한 오기를 노나라 장군으로 기용하려 했지만 부인의 출신이 문제가 되었다. ‘오기는 공명심에 불탄 나머지 자기 아내를 죽여 제나라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吳起于是欲就名 遂殺其妻 以明不與齊也/ 오기우시욕취명 수살기처 이명불여제야).’ ‘史記(사기)’ 손자 오기열전에 실려 있다.

어떤 일을 이루려면 결심을 이어가야 하는데 쉽지 않아 作心三日(작심삼일)이 많다.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나중에야 삼수갑산을 갈지라도’ 끝장을 내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자기만 옳고 나머지에 피해를 끼친다면 큰일을 이루고도 지탄을 받을 것이다. 야심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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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8. 06:28 카테고리 없음

명주암투(明珠暗投)

- 구슬을 어둠 속으로 던지다, 가치를 모르고 썩히다.

[밝을 명(曰/4) 구슬 주(玉/6) 어두울 암(日/9) 던질 투(扌/4)]

선물을 주고받을 때 정성이 깃들어 있지 않거나 예의에 어긋나면 주고도 좋은 소리 못 듣는다. 복숭아를 선물로 주고 자두로 답례한다는 投桃報李(투도보리)란 말이 있다. 격식에 맞게 선물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귀한 선물이라도 그것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값을 안다. 빛이 곱고 귀중한 야광주(明珠)를 어둠 속으로 던진다는(暗投) 이 말은 선물을 주고도 알아보지 못할 때 줬기에 예에 어긋난 것으로 원망을 산다는 뜻이다. 번쩍이는 구슬이라도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듯이 재능을 가진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윗사람 때문에 썩히고 있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 성어는 ‘史記(사기)’의 雛陽(추양) 열전에서 유래했다. 前漢(전한)의 6대왕 景帝(경제)의 동생 孝王(효왕)을 모셨던 문객이 추양이다. 효왕은 태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때 내심 속셈을 갖고 여러 저명인사와 교제해 인맥을 두텁게 하려 했다. 효왕은 여러 명사들을 초청하여 주연을 베푸는 등 환대했는데 문장에 능했던 추양도 포함됐다. 하지만 효왕은 현자를 존중하고 있다는 명성을 얻기 위해서일 뿐 추양을 깊이 신임하지는 않았다. 효왕은 측근 羊勝(양승) 등이 추양을 모함하자 감옥에 가두고 처형하려 했다.

추양은 이름을 더럽힐 수 없다며 옥 안에서 효왕에게 글을 올렸다. 獄中上梁王書(옥중상양왕서)로 이름난 글이다. 효왕이 梁(양)지역을 다스렸기 때문에 양효왕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그는 진실된 사람은 의심을 받지 않는다고 알았는데 옛날 보옥을 바쳤던 卞和(변화)나 나라에 충성을 바쳤던 李斯(이사) 등이 중벌을 받는 것을 보니 빈말이었다며 이어진다. ‘어두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명월주와 야광벽을 던지면 칼을 잡고 노려보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明月之珠 夜光之璧 以闇投人於道路 人無不按劍相眄者/ 명월지주 야광지벽 이암투인어도로 인무불안검상면자).’ 眄은 곁눈질할 면.

알아보기 어려울 때는 보석이라도 좋아할 리 없다. 반대로 어리석고 깨어있지 못하다면 보물을 가질 자격이 없다. 아래에서 아무리 훌륭한 의견을 내어도 명주임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묻혀있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깊은 뜻을 깨달은 효왕은 추양을 풀어주고 상객으로 삼았다. 번득이는 재주를 가진 인재는 곳곳에 묻혀 있다. 인사를 할 때마다 잡음이 나오는 것은 알아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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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7. 06:24 카테고리 없음

관즉득중(寬則得衆)

- 마음이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

[너그러울 관(宀/12) 곧 즉(刂/7) 얻을 득(彳/8) 무리 중(血/6)]

남을 사랑하고 어질게 행동하는 仁(인)은 본래 등에 짐을 진 사람을 의미했다고 한다. 孔子(공자)가 처음으로 강조한 인은 孝悌(효제) 즉 혈연적인 사랑을 널리 퍼뜨려 나라까지 평화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후일 孟子(맹자)가 완성시킨 五常(오상)도 인이 중심이 돼 仁義禮智信(인의예지신)으로 되었고 유교에서 가장 중심덕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너그러운 마음씨를 가지면(寬則)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다(得衆)는 이 말도 공자가 인에 대해서 설명할 때 나온다.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물론 많은 사람의 사랑과 애정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4년 리더십의 덕목을 말하는 신년휘호로 이 성어를 선정한 이후 잘 알려졌다.

‘論語(논어)’의 陽貨(양화)편에 등장하는 공자와 제자 子張(자장)의 문답을 보자. 자장은 字(자)이고 이름이 顓孫師(전손사, 顓은 오로지 전)인 陳(진)나라 출신이다. 인에 대해서 여쭙자 공자가 ‘하늘 아래에서 다섯 가지 덕목을 실천할 수 있다면 사람답다(能行五者於天下 爲仁矣/ 능행오자어천하 위인의)’고 한다. 다시 그 내용을 자세히 알려달라고 하여 대답한다. ‘다섯 가지는 공손함, 너그러움, 미더움, 민첩함, 은혜로움이다.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며, 믿음이 있으면 사람들이 신임하게 되고, 민첩하면 기회가 올 때 공적을 세울 수 있고, 은혜로우면 사람들을 부릴 수 있게 된다(恭 寬 信 敏 惠, 恭則不侮 寬則得衆 信則人任焉 敏則有功 惠則足以使人/ 공 관 신 민 혜, 공즉불모 관즉득중 신즉인임언 민즉유공 혜즉족이사인).’ 이 덕목들은 인을 실천할 때 필요한 것인데 공손, 관대, 은혜로움은 특히 사람과의 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남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지녀야 하는 필수 덕목이기도 하다.

우리의 지도자들, 이러한 덕목을 잘 지니고 있을까. 대기업은 많이 가진 자가 더 욕심 부리고, 항상 시끄러운 정치판에서는 거론하기조차 부끄럽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2019. 8. 6. 06:23 카테고리 없음

변화무상(變化無常)

- 늘 변화하여 일정하지 않음

[변할 변(言/16) 될 화(匕/2) 없을 무(灬/8) 떳떳할 상(巾/8)]

사람의 일생은 덧없다고 말한다. 사람의 삶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은 늘 바뀌어(變化) 일정하지 않다(無常). 의미하는 바는 깊어도 쉬운 글자로 된 이 성어는 ‘莊子(장자)’에서 처음 나왔다고 하니 의외다. 변화하는 정도가 비할 데 없이 심하다는 變化無雙(변화무쌍)과는 헷갈리지 않게 주의할 일이다. 늘 변화하니 인생백세시대가 왔다고 해도 草露人生(초로인생)이라 하루아침 사라지는 이슬과 같다. 산 자는 죽고 젊은 자는 늙는다. 그래서 人生無常(인생무상)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諸行無常(제행무상)도 있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소멸하며, 이어가기 때문에 한 모습으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의미라 한다.

장자의 雜篇(잡편) 중에서도 마지막 天下(천하)편은 중국 고대의 학술을 몇 개의 범주로 나누고 각각의 특징과 사상가들을 소개한다. 후학들이 편찬했다는 말대로 莊周(장주)도 설명하는 부분에 성어가 나온다. ‘적막하여 형체가 없으며 끊임없이 변화하여 일정한 모습이 없다(芴漠無形 變化無常/ 홀막무형 변화무상), 죽음과 삶은 천지와 나란히 함께 있고, 신명과 함께 변해 간다(死與生與 天地並與 神明往與/ 사여생여 천지병여 신명왕여).’ 芴은 황홀할, 희미할 홀. 芴漠(홀막)이 寂漠(적막)으로 나오는 곳도 있다.

그러면서 장자는 아득히 멀기만 하고 만물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돌아가 의지할 만한 곳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런 학술의 가르침을 듣고 기뻐하며 자기 뜻을 자유분방하게 펼쳤다. 변화무쌍한 이치를 허황되기는 하지만 우화 형식으로 변화무쌍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만물이 변천한다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얻었다고 해서 영원하지 않으니 기뻐할 수 없고, 잃었다고 해서 근심하는 일이 없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통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에 아등바등한다. 하지만 인간의 길흉화복은 돌고 돈다. ‘인간 만사는 새옹지마’라고 했으니 말이다. 짧은 인생을 무상하다며 덧없다고 비관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삶을 탄생시키는 변화의 단계로 보면 활기를 찾을 수 있다. 오늘의 불행을 나에게만 찾아왔다고 불평하며 주저앉으면 다음의 행복이 자리할 틈이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2019. 8. 5. 16:06 카테고리 없음

주마간화(走馬看花)

– 말을 타고 달리며 꽃을 구경하다, 대충 보고 지나가다.

[달릴 주(走/0) 말 마(馬/0) 볼 간(目/4) 꽃 화(艹/4)]

온갖 생물이 흐드러진 萬化方暢(만화방창) 따뜻한 봄날에 느긋이 말 등에 올라타고 산천경개 구경한다고 하면 무엇이 느껴질까. 신선이 따로 없이 좋은 팔자라고 모두들 부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말을 타고 달리며(走馬) 꽃구경을 한다(看花)면 아름다운 꽃을 제대로 감상할 수는 없다. 흔히 走馬看山(주마간산)으로 잘 알려진 이 성어는 ‘수박 겉핥기’란 속담과 같이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 대충대충 훑고 지나간다는 뜻으로 굳어졌다. 처음 꽃으로 사용될 때는 일이 뜻대로 되어 마음이 즐겁다는 뜻이었는데 의미하는 바가 달라졌다.

중국 中唐期(중당기) 시인으로 유명한 孟郊(맹교, 751~814)는 韓愈(한유)와 가깝게 지내며 復古主義(복고주의)에 동조한 작품을 많이 썼다. 가정적으로 불우하여 청년 시절 청렴한 생활을 하면서 벼슬에는 전혀 뜻이 없이 시작에만 열중했다. 어머니의 권고에 못 이겨 41세가 되던 해 과거에 응시했지만 보기 좋게 낙방하고 주변에서 온갖 냉대를 다 받았다. 두 번째 도전에서도 낙방하고선 ‘두 번이나 서울 땅을 밟고서도 또 떨어져, 헛되이 눈물 머금고 꽃만 바라보네(兩度長安陌 空將淚見花/ 양도장안맥 공장루견화)’라며 피눈물을 흘렸다.

陌은 길 맥. 그러다 46세 때에 겨우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는데 세상인심이 급변했음을 실감했다. 맹교가 어느 술좌석에서 또 꽃을 등장시켜 각박한 민심을 풍자했다. ‘登科後(등과후)’란 시의 부분을 보자. ‘봄바람에 뜻을 얻어 세차게 말을 모니, 하루 만에 장안의 꽃을 다 보았네(春風得意馬蹄疾 一日看盡長安花/ 춘풍득의마제질 일일간진장안화).’ 말을 타고 달리며 장안의 꽃을 다 구경했다는 것은 하루 만에 좋은 것을 모두 맛보았다는 은유로 이전 낙방했을 때와 천양지차를 실감했다는 표현이다. 앞부분의 春風得意(춘풍득의)란 말도 벼슬을 얻게 된 기쁨을 표현하는 성어가 됐다.

다른 목적이 없이 관광을 할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구경하는 것이 더욱 흥이 난다. 하지만 학업이나 사업을 할 때는 목표가 있고 이익이 걸려 있어 대충하면 실패가 기다린다. 이것을 확연히 구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으니 탈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posted by boy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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