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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알츠하이머'에 해당되는 글 1

  1. 2023.01.20 배우 윤정희 프로필 배우 윤정희별세 배우 윤정희알츠하이머투병중별세1
배우윤정희프로필


이름 윤정희

본명 손미자 (孫美子)

출생 1944년 7월 30일  부산

사망 2023년 1월 19일 (향년 78세) 프랑스 파리

신체 160cm

배우자 백건우

자녀 딸 백진희(1977년생)

학력


전남여자고등학교 (졸업)
조선대학교 (영어영문학 / 수료)
우석대학교 (사학 / 학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연극영화학 / 석사)
파리 제3대학교 대학원 (예술학 / 석사)

종교 가톨릭 (세례명: 데레사)

활동 1967년 ~ 2010년

영화배우 활동


대학 졸업 이후, 1967년 영화 청춘극장의 오유경 역할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남정임·문희와 함께 1960년대와 1970년대 대한민국 여자 영화배우 트로이카로 큰 인기를 얻었다. 청춘극장은 1967년 팔도강산 다음의 관객을 동원했다. 1968년에는 내시, 천하장사 임꺽정, 일본인 등으로, 1969년에는 독 짓는 늙은이, 팔도 사나이로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이는 일부분일 뿐 흥행한 영화는 이보다 많다.


사실 그녀는 단순하게 인기가 많은 데에 그치지 않고 폭 넓은 배역 폭을 보여줌으로써 영화사에 굵직한 기여를 했다. 한 블로거의 말에 의하면, 당시 젊은 여배우가 맡는 통상적인 역할은 '청순가련형'과 '요부형' 이 두 가지 역할이 대부분이었는데, 윤정희의 경우에는 이 두 역은 물론이고 백치미까지 능숙하게 연기했다고. 단순히 트로이카들과 비교해도 이 차이가 두드러지는데, 하이틴 스타와 같은 통통 튀는 발랄한 역을 연기한 남정임, 우수에 빠진 눈매로 비련의 여인을 연기했던 문희에 비해 폭 넓은 역을 맡았다. 또 그녀의 이미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적인 세련미이다.


그러나 문희가 미워도 다시 한번의 흥행 이후, 1969년 벽속의 여자, 꼬마신랑 등을 대거 흥행시키며 1970년대부터 윤정희를 능가하여 조금 위축된 감을 보여줬다. 하지만 1971년 문희와 남정임이 은퇴한 반면 윤정희는 결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했다. 


1976년에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했고, 이듬해 딸 백진희를 낳았다. 부부 금슬은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1977년에는 야행이 그 해 흥행 영화 5위권 안에 들어가며 저력을 보여줬다. 당시에는 영화 말고 드라마가 크게 성장했는데, 윤정희는 드라마에서도 활약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1981년, 자유부인 '81이 그해 흥행 1위 영화가 되면서 남정임, 문희가 이미 이룬 영화 1위 흥행 여배우 자리에 뒤늦게나마 올랐다. 1987년에는 위기의 여자로 흥행을 했으며, 1994년에는 만무방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가 만 66세였던 2010년에는 영화 "시"로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본인의 진가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이후로는 알츠하이머 투병 때문에 이 영화 이후 사실상 은퇴했으며, 심지어 해당 영화를 촬영하던 당시에도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으로 인해 대사를 적어놓고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1967년부터 2010년까지 43년 동안 대종상 여우주연상 3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3회, 백상예술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3회 수상했다.

알츠하이머 투병과 소란


2019년 11월  백건우 인터뷰를 통해 윤정희가 10여년째 알츠하이머 투병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현재 심각한 상태라고 전했다. 현재 그녀를 돌보고 있는 친딸 백진희 씨에 따르면 현재 친딸인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며, 왜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냐고 한다고 한다.


2021년 2월 5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외부와 단절된 채 하루하루 스러져가는 영화배우 윤정희를 구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노컷뉴스, 머니투데이. 해당 청원에는 관리자에 의해 실명이 가려진 상태지만, 언론 기사의 설명을 보면 윤정희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청원자는 "2019년 4월에 남편 백건우와 딸이 서울에서 치료를 받던 윤정희를 파리로 끌고 갔다.", "현재 윤정희는 본인의 집에서 쫓겨나 파리 외곽의 아파트에서 홀로 알츠하이머 및 당뇨병 투병 중이다."라며 "백건우는 아내를 만나지 않은 지가 2년이 훨씬 넘었고, 아내의 병 간호도 못 하겠다면서 형제들한테 떠넘긴 지가 오래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 사이에선 "프랑스에 살고 있는 개인 가정문제에 국가가 나서야 하나", "남편과 딸도 있는데 왜 형제들이 나서느냐"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2018년 그랜드 캐니언 추락 사고 당시 사고 유학생의 치료와 이송을 도와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던 것과 비슷하다.


2월 7일, 백건우의 소속사인 빈체로는 "해당 청원의 내용은 거짓이며, 윤정희는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반박 입장문을 발표했다.  백건우 측에 따르면 윤정희의 알츠하이머가 심해져 2019년 초 윤정희가 모친상을 당하여 귀국했을 때 한국에서 요양원 등 머물 곳을 알아봤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너무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결국 프랑스 오케스트라 단원인 친딸 백진희 씨 파리 집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여 간호사들과 함께 돌보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지난 2019년 윤정희의 친동생 3인이 윤정희의 배우자인 백건우와 친딸 백진희 씨에 대한 재산, 신상 후견인 지위 이의 신청을 프랑스 법원에 제기하였다가 패소한 사실이 알려졌다. 2019년 9월 프랑스 1심에서 패소했고, 파리고등법원에 항소하여 2020년 11월 최종 패소했다. 파리고등법원은 "손미자(윤정희의 본명)가 배우자 및 딸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재 그녀는 안전하고 친숙한 환경에서 안락한 조건을 누리고 있다."고 판단했고, "배우자와 딸이 그녀에게 애정을 보이지 않으며, 그녀가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고 금전적 횡령이 의심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판결로 인해 백건우와 백진희씨의 후견인 지위가 법적으로 유지되었다.


2월 9일, 윤정희의 동생인 손병욱 씨는 중앙일보를 통해 백건우 측의 입장문을 반박했다.우선, 프랑스에서 진행된 윤정희의 후견인 선정 재판에 대해서는 "백진희는 프랑스 시민이지만, 같이 후견인 신청을 한 윤정희의 세 형제는 외국 국적이라서 불리하게 진행됐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돈 때문에 이번 분쟁이 벌어졌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우리 형제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데 문제가 전혀 없다"면서 "직계 가족이 있는 형제 명의의 재산을 어떻게 노릴 수가 있나. 가능하기나 한가"라고 반박했다.


일단 현재까지 상황을 정리해 보면 백건우와 윤정희의 친정 집안 사람들 간의 윤정희의 후견인 문제로 생각 이상으로 오랫동안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9월 7일 해당 사건을 MBC PD수첩이 다루게 되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 51 단독 장진영 부장판사는 2022년 3월 24일 윤정희 씨의 딸인 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45) 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후견인을 백건우 씨로 판결했다. 손병욱 씨는 이에 불복해 항고했으나 기각되었고, 2022년 11월 재항고하여 그녀의 사망 직전까지 대법원에서 소송이 계속되고 있었다.

사망


2023년 1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남편과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78세로 사망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면서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성년후견인 소송'은 법적 판단 없이 종료될 전망이다.

백건우에 따르면 그녀는 딸 (백)진희의 바이올린 소리(연주)를 들으며 꿈꾸듯 편안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박보균 장관은 20일 조전을 통해 "윤정희 님은 오랜 세월 빼어난 연기력과 예술혼을 보여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계의 거물"이라며 "무대를 떠난 뒤에도 영화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과 집념으로 후배 예술인들에게 귀감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고인이 남긴 탁월한 성취와 빛나는 발자취에 한없는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고인과 함께 많은 작품에 출연한 원로배우 신영균은 “불란서(프랑스)에 가기 전 저를 만나면 ‘선생님, 나하고 마지막 작품 꼭 해요’라고 했다. 그렇게 약속했는데, 나보다 먼저 갔다. 가슴이 많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20일 김혜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별다른 말 없이 고인의 사진 6장을 잇달아 올렸다.

김혜수가 올린 사진에는 흑백으로 찍힌 윤정희의 생전 모습이 담겨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부터 2010년 복귀작 '시'를 함께한 이창동 감독과 함께 찍힌 사진까지.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았지만 여러 장의 사진으로 김혜수가 드러낸 추모의 마음은 모두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영화 배우 윤정희의 장례가 고인이 거주해온 프랑스 파리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20일 "백건우 선생님과 따님 등 유족 쪽에서는 일단 장례 절차를 (프랑스에서) 조용히 마치고 싶다는 의사를 보내왔다, 그리고 나중에 백 선생님이 한국에 들어와서 영화인들과 (추모의 방법을) 상의하는 것으로 얘기 중"이라며 윤정희의 장례 일정이 천주교식 가족장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치러질 것이라고 알렸다.


이어 "국내에서 영화인들 입장에서는 윤정희 선생님을 영화인장이나 영화인협회장으로 모실 것을 상의했었다, 윤 여사님을 좋아하는 팬들이 한국에 많고 영화계 후배도 많아서 분향소라도 차리는 게 어떻겠느냐는 생각을 백 선생님 등 유족 쪽에 전달했지만 가족 분들이 현지 성당에서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르겠다는 생각을 아주 강하게 갖고 계시다"며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유족들의 뜻을 따르게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족들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출연작품

영화


1967년 《안개》
1967년 《까치 소리》
1967년 《강명화》
1967년 《개살구도 살구냐》
1967년 《그리움은 가슴마다》
1967년 《보은의 기적》
1967년 《삼등 여관》
1967년 《싸리골의 신화》
1967년 《암행어사》
1967년 《외롭지 않다》
1967년 《청춘극장》
1967년 《초야》
1967년 《황혼의 검객》 ... 향녀 역
1968년 《가로수의 합창》
1968년 《내시》
1968년 《감자》
1968년 《규방》
1968년 《금수강산》
1968년 《낙조》
1968년 《난풍》
1968년 《눈보라》
1968년 《단발 기생》
1968년 《대검객》
1968년 《독수공방》
1968년 《동경 특파원》
1968년 《맨발의 영광》
1968년 《밤은 무서워》
1968년 《밤하늘의 트럼펫》
1968년 《방울대감》
1968년 《살인 부르스》
1968년 《설녀》
1968년 《성난 대지》
1968년 《소라의 꿈》
1968년 《순애보》
1968년 《슬픔은 파도를 넘어》
1968년 《아빠 안녕》
1968년 《악몽》
1968년 《어머니는 강하다》
1968년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1968년 《여로》
1968년 《영》
1968년 《옥비녀》
1968년 《순정》
1968년 《이수》
1968년 《일본인》
1968년 《잊으려 해도》
1968년 《장군의 수염》
1968년 《절벽》
1968년 《찬란한 슬픔》
1968년 《천하장사 임꺽정》
1968년 《칼맑스의 제자들》
1968년 《파란 이별의 글씨》
1968년 《팔도 기생》
1968년 《폭풍의 사나이》
1968년 《풍운 - 임란야화》
1968년 《화초 기생》
1968년 《황혼의 부르스》
1968년 《흐느끼는 백조》
1969년 《이조 여인 잔혹사》
1969년 《늦어도 그날까지》
1969년 《당신》
1969년 《독짓는 늙은이》
1969년 《동경의 왼손잡이》
1969년 《뜨거워서 좋아요》
1969년 《마법선》
1969년 《만고강산》
1969년 《만나지 않았다면》
1969년 《명동 나그네》
1969년 《물망초》
1969년 《별명 붙은 여자》
1969년 《사랑은 눈물의 씨앗》
1969년 《사랑이 미워질 때》
1969년 《사랑하고 있어요》
1969년 《3인의 여검객》
1969년 《세월이 흘러가면》
1969년 《식모의 유산》
1969년 《안개 낀 상해》
1969년 《어느 지붕 밑에서》
1969년 《여선장》
1969년 《여섯개의 그림자》
1969년 《여진족》
1969년 《0시의 부르스》
1969년 《5인의 사형수》
1969년 《유혹》
1969년 《장미의 성》
1969년 《장한몽》
1969년 《저 눈밭에 사슴이》
1969년 《제4의 사나이》
1969년 《조용히 살고 싶어》
1969년 《주차장》
1969년 《죽어도 그대 품에》
1969년 《죽어도 좋아》
1969년 《지하실의 7인》
1969년 《창》
1969년 《첫날밤 갑자기》
1969년 《청춘》
1969년 《청춘을 다 바쳐》
1969년 《추억》
1969년 《팔도 사나이》
1969년 《포옹》
1969년 《한 발은 지옥에》
1969년 《한번 준 마음인데》
1969년 《흑산도 아가씨》
1969년 《명동 출신》
1970년 《거북이》
1970년 《결혼 교실》
1970년 《결혼 대작전》
1970년 《광야의 표창잡이》
1970년 《그 분이 아빠라면》
1970년 《그 여자를 쫓아라》
1970년 《기러기 아빠》
1970년 《내 목숨 당신 품에》
1970년 《누야 와 시집 안 가노》
1970년 《당신은 여자》
1970년 《대답해 주세요》
1970년 《먼데서 온 여자》
1970년 《명동 노신사》
1970년 《버림 받은 여자》
1970년 《범띠 가시네》
1970년 《별명 붙은 여자 2》
1970년 《비나리는 선창가》
1970년 《비에 젖은 두 여인》
1970년 《비운의 왕비》
1970년 《3호 탈출》
1970년 《순결》
1970년 《아 임아》
1970년 《아빠 품에》
1970년 《아파트를 갖고 싶은 여자》
1970년 《안개 속의 탈출》
1970년 《여인 전장》
1970년 《여자이기 때문에》
1970년 《욕망의 사나이》
1970년 《이별의 15열차》
1970년 《일요일 밤과 월요일 아침》
1970년 《임 그리워》
1970년 《천사여 옷을 입어라》
1970년 《천사의 눈물》
1970년 《첫경험》
1970년 《최고로 멋진 남자》
1970년 《한 많은 남아일생》
1970년 《해변의 정사》
1970년 《호랑이 꼬리를 잡은 여자》
1970년 《황금70 홍콩작전》
1970년 《7인의 숙녀》
1971년 《당신과 나 사이에》
1971년 《떡국》
1971년 《현상 붙은 4인의 악녀》
1971년 《옥합을 깨뜨릴 때》
1971년 《미스 리》
1971년 《갑순이》
1971년 《의형》
1971년 《그날 밤 생긴 일》
1971년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1971년 《분례기》
1971년 《최고로 멋진 남자 2》
1971년 《열두 여인》
1971년 《흐느끼는 두 여인》
1971년 《유쾌한 딸 7형제》
1971년 《들개》
1971년 《여창》
1971년 《한 많은 두 여인》
1971년 《어느 여도박사》
1971년 《죄 많은 여인》
1971년 《간다고 잊을소냐》
1971년 《족보》
1971년 《명동에 흐르는 세월》
1971년 《내 아내여》
1971년 《두 딸의 어머니》
1971년 《친정 아버지》
1971년 《처복》
1971년 《안개 부인》
1971년 《짚세기 신고 왔네》
1971년 《빗속에 떠날 사람》
1971년 《두 줄기 눈물 속에》
1971년 《두 딸》
1971년 《사랑할 때와 죽을 때》
1971년 《공포의 황금 부두》
1971년 《괴짜 신부》
1971년 《남매는 단둘이다》
1971년 《동과 서》
1971년 《비에 젖은 두 남매》
1971년 《빨간 마스크의 여인》
1971년 《성난 해병 결사대》
1971년 《쌍벌한》
1971년 《엄마 안녕》
1971년 《초원의 빛》
1971년 《나를 버리시나이까》
1972년 《평양 폭격대》
1972년 《현대인》
1972년 《새남터의 북소리》
1972년 《약한 자여》
1972년 《목소리》
1972년 《석화촌》
1972년 《토요일 오후》
1972년 《어디로 가야하나》
1972년 《동업자》
1972년 《무녀도》
1972년 《경복궁의 여인들》
1972년 《웃고 사는 박서방》
1972년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1972년 《명동 잔혹사》
1972년 《별이 빛나는 밤에》
1972년 《0시》
1972년 《궁녀》
1972년 《며느리》
1972년 《유정 30년》
1972년 《작은 꿈이 꽃필 때》
1972년 《기로》
1972년 《효녀 청이》
1972년 《미움이 변하여》
1972년 《가지마오》
1972년 《돌아온 자와 떠나야 할 자》
1972년 《폭우 속의 도망자》
1972년 《헤어져도 사랑만은》
1973년 《삼일천하》
1973년 《여대생 또순이》
1973년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
1973년 《애인 교실》
1973년 《행복이 쏟아지는 벌판》
1973년 《육군사관학교》
1973년 《9월의 찻집》
1973년 《고향에 진달래》
1973년 《광복 20년과 백범 김구》
1973년 《난파선》
1973년 《누나》
1973년 《어머님 생전에》
1973년 《요화 배정자 2》
1974년 《황홀》
1974년 《꽃상여》
1975년 《극락조》
1975년 《태백산맥》
1975년 《내일은 진실》
1975년 《학녀》
1977년 《야행》
1978년 《화려한 외출》
1979년 《여수》
1979년 《사랑의 조건》
1979년 《화조》
1979년 《신궁》
1981년 《자유부인》 ... 오선영 역
1982년 《저녁에 우는 새》 ... 상림 역
1982년 《삐에로와 국화》
1987년 《위기의 여자》 ... 수명 역
1988년 《시로의 섬》 ... 세원 역
1992년 《눈꽃》 ... 강애 역
1994년 《만무방》 ... 여인 역
2010년 《시》 ... 손미자 역

방송 출연


1971년
《제1회 봄맞이 올스타 온퍼레이드》 (KBS)
1973년
《스타쇼 - 윤정희아워》 (MBC)
1992년
《임백천의 뮤직쇼》 (KBS COLL FM)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MBC)
1994년
《김한길과 사람들》 (MBC)
《문화집중 스튜디오D》 (MBC)
《투맨쇼 두남자와 만납시다》 (SBS)
1996년
《정보특급 금요베스트10》 (SBS)
1998년
《행복채널 - 금요초대석》 (KBS)
2010년
《황금어장 - 무릎팍도사》 (MBC)

TV 드라마


TBC 《인목대비》 인목왕후 김씨 역 (1974년)

CF 출연 작품


1988년 한샘
1992년 CJ헬스케어 비타메진
1994년 파리바게뜨

경력


1995년 제19회 몬트리올영화제 심사위원
1998년~2006년 청룡영화상 심사위원
2000년 프랑스 도빌국제영화제 심사위원
2006년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심사위원
2006년 제17회 디나르영화제 심사위원
2010년 제12회 뭄바이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수상


1967년 제6회 대종상 신인상 《청춘극장》
1967년 제2회 백마상 신인여우상 《청춘극장》
1967년 제2회 대일영화상 신인여우상《청춘극장》
1967년 제2회 영화예술상 신인상 《청춘극장》
1967년 제5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1968년 제11회 부일영화상 신인상 《안개》
1968년 제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연기상 《안개》
1968년 제3회 백마상 인기여우상 《장군의 수염》
1969년 제4회 인도국제영화제 인기상 《독짓는 늙은이》
1969년 제4회 백마상 여우주연상 《지하실의 7인》
1969년 제12회 부일영화상 인기여우상
1969년 제6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1969년 핑크리본상 여우주연상 《장군의 수염》
1969년 라이온스상 여우주연상 《장군의 수염》
1970년 제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독짓는 늙은이》
1970년 제6회 백상예술대상 애독자인기상
1970년 제13회 부일영화상 인기여우상
1970년 제13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 《독짓는 늙은이》
1970년 제7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1971년 제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해변의 정사》
1971년 제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애독자인기상
1971년 제10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1971년 제14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 《첫경험》
1971년 제14회 부일영화상 인기여우상
1971년 제6회 대일영화상 여우주연상 《분례기》
1971년 제6회 백마상 인기상
1971년 제6회 영화예술상 여우주연상 《옥합을 깨뜨릴 때》
1971년 핑크리본상 여우주연상 《분례기》
1971년 제8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1972년 제18회 아시아영화제 인기여우상 《무녀도》
1972년 제8회 백상예술대상 애독자인기상
1972년 제9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석화촌》
1972년 제9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1973년 제19회 아시아영화제 여우주연상《궁녀》
1973년 제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석화촌》
1973년 제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애독자인기상
1973년 제16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 《석화촌》
1973년 제10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효녀 심청》
1973년 제10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1974년 제1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애독자인기상
1975년 제1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애독자인기상
1977년 제3회 현대영화비평가그룹상 특별상 《야행》
1992년 제1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눈꽃》
1994년 제32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만무방》
2010년 제47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시》
2010년 제31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시》
2010년 제11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시》
2010년 제34회 카이로 국제영화제 평생공로상
2010년 제4회 아시아태평양스크린어워드 여우주연상《시》
2011년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오피시에
2011년 제13회 필리핀 시네마닐라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시》
2011년 제37회 LA비평가협회(LAFCA) 여우주연상《시》
2019년 제20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공로상
2019년 제8회 대한민국 베스트 스타상(한국영화배우협회) 베스트 공로상





posted by boy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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