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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6. 11:16 카테고리 없음

이름 천창수

출생 1958년 11월 20일 경상남도 김해군(현, 김해시)

본관 영양

소속 울산광역시 교육청(교육감)

배우자 노옥희(1989년 결혼, 2022년 사별)

학력


부산고등학교
서울대학교사범대학 사회교육학과

경력


1978년 겨레터 야학 교사
1978년 유신독재 반대 유인물 배포로 긴급조치 9호 위반 구속, 제명
1983년 현대중전기(현대중공업) 입사
2000년~2001년 민주노총금속연맹울산본부본부장
2002년~2003년 신림고등학교교사
2003년~2008년 방어진고등학교교사
2008년~2013년 화암고등학교교사
2013년~2017년 화진중학교교사
2015년~2016년 전국사회교사모임회장
2017년~2021년 화암중학교교사
2019년~ 울산교육연구소북유럽교육복지연구회회장
2021년~ 울산교육연구소정책분과장
2023년~ 울산광역시교육청교육감,노옥희재단추진위원회공동대표

수상


2021년 교육부장관표창


천창수(千昌秀, 1958년 11월 20일)는 대한민국의 교육자 겸 사회운동가로 민선 8기 울산광역시교육감이다. 울산광역시 최초의 여성 교육감인 노옥희의 배우자이다.

1958년 경상남도 김해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1973년 부산고등학교에 입학, 3학년 때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 때 반 친구들과 함께 광고비 모금활동을 통해 사회 운동을 시작했다. 1976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학과에 입학하였고, 당시 겨레터라는 곳에서 야학 교사로 활동했다. 대학 생활 도중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를 반대하는 유인물을 배포한 혐의로 긴급조치 9호로 인해 구속되었다.


1980년 학교에 복학한 이후 1982년 졸업했다. 교직을 이수하였으나 구속 전과로 인해 교사 발령을 받지 못해, 현대중전기(현재의 현대중공업)에 입사했으나 1987년 민주화운동이자 노동운동이었던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참가한 이후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던 신분이 드러나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다는 이유로 해고 당했다. 이후 영남노동운동연구소를 만들어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다 민주화 이후 2002년이 되어서야 교사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신림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이후부터 교사 생활을 계속 이어갔다.


당시 울산지역에서 울산사회교사모임을 만들었고, 작은도서관의 설립 및 운영위원을 맡았었으며 청소년 인문 아카데미 '날개'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런 경력과 함께 전국사회교사모임의 회장도 지내기도 했다. 2022년에 교사에서 퇴임하여 사단법인 울산교육연구소의 정책분과에서 활동하고 있다. 울산광역시교육감으로 활동하던 아내 노옥희가 사망하자 울산지역 노옥희 교육감 지지자들과 교사들이 만든 노옥희재단 추진위원회 공동대표로 추대 되었고, 울산광역시교육감 보궐선거에 출마하였다.

울산교육감당선


5일 치러진 울산시교육감 보궐선거에서 천창수 후보가 당선됐다. 천창수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별세한 노옥희 전 울산시교육감의 남편으로, 울산교육에 대한 노옥희 전 교육감의 ‘교육 공공성 강화’ 정책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6일 오전 개표 완료 결과, 천창수 당선인은 61.94%(15만3140표)의 득표율을 기록해 38.05%(9만4075표)에 그친 김주홍 후보를 5만9065표 차이로 여유롭게 따돌렸다. 교육계는 천창수 당선인은 진보 성향으로, 김주홍 후보는 보수 성향으로 분류한다.이번 선거는 지난해 12월 노옥희 당시 교육감이 갑작스럽게 별세해 치러졌다. 울산 진보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는 노옥희 전 교육감 별세로 치러지는 교육감 보궐선거 후보로 천 당선인을 추대한 바 있다. 천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 ‘노옥희 울산교육, 중단없이 한 발 더’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천창수 당선인은 경남 김해 출신으로 2002년 교사 발령을 받아 서울에서 1년 근무를 하고, 이듬해 가족이 있는 울산으로 전출온 뒤 19년 동안 평교사로 근무했다. 천창수 당선인은 “이번 선거는 울산교육의 변화와 혁신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시민들의 준엄한 명령이다”며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이 더 필요한지 항상 살피고 고민하겠으며,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울산교육이 우리나라 공교육의 표준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별세한 노옥희 전 교육감은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철학 아래 무상급식을 유치원에서부터 고교까지 전면 확대하는 등 교육 공공성 강화 정책을 시행해 지역 교육에 변화와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8 지방선거 때 당선돼 2022년 재선에 성공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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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옥희교육감프로필 노옥희교육감 사망

노옥희교육감프로필 이름 노옥희 盧玉姬 | Roh Okhee 출생 1958년 5월 15일 경상남도 김해군 생림면 금곡리 모정 사망 2022년 12월 8일 본관 광주 노씨 학력 1965.03~1971.02 한림국민학교 졸업 1971.03~197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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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옥희교육감프로필


이름 노옥희 盧玉姬 | Roh Okhee

출생 1958년 5월 15일 경상남도 김해군 생림면 금곡리 모정

사망 2022년 12월 8일

본관 광주 노씨

학력


1965.03~1971.02 한림국민학교 졸업
1971.03~1974.02 한림중학교 졸업
1974.03~1977.02 데레사여자고등학교 졸업
1977.03~1979.02 부산대학교 수학과 졸업

경력


1979.03~1986.10 현대공업고등학교 교사
1986.11~1989.05 울산사회선교실천협의회 노동문제상담소 간사
1997.01~2000.12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울산지부 지부장
1997.01~2000.12 고교평준화실현 시민연대회의 공동의장
1997 국민승리21 울산본부 노동위원장
1999.09~2002.08 명덕여자중학교 교사
2002.09~2006.03 울산광역시 교육위원
2002 학교급식울산연대 공동집행위원장
2005 울산장애인교육권연대 자문위원
2005 동구 학교운영위원협의회 지도위원
2006 울산인권운동연대 이사
2006.11~2008.11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민생특별위원회 위원장
2007 울산교육연구소 자문위원
2009.02~더불어숲 작은도서관 대표
2010.04~2010.06.16 진보신당 울산시당 위원장
2011 노동인권센터 대표
2011.12~2012.04 통합진보당 울산시당 공동대표
2014.02~2018.02 울산부모교육협동조합 이사장
2018.07~2022.06 제8대 울산광역시 교육청 교육감
2022.07~2022.12 제9대 울산광역시 교육청 교육감

수상


1997 울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울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기억하는 시민상
1997 전태일기념사업회 전태일 노동상
2002 울산여성유권자연맹 우수 교육위원상

도서


2011년 12월05일 이제 다시 시작이다(나의 삶 운동 정치 그리고 사람들)

전과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노동쟁의조정법위반: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 1987년 12월 30일 선고, 1988년 12월 21일 특별사면
공용물건손상,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방해,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벌금 200만원 - 2001년 10월 8일 선고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도로법위반: 벌금 100만원 - 2009년 9월 10일 선고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벌금 100만원 - 2009년 10월 26일 선고

대한민국의 정치인, 교육인으로 울산광역시 최초의 여성-진보교육감이다.


1958년 5월 15일 경상남도 김해군 생림면(현 김해시 한림면) 금곡리 모정마을에서 태어났다. 한림초등학교, 한림중학교, 데레사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부산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하여 교직이수를 하고 졸업한 뒤, 울산에서 수학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전교조 활동으로 1989년 해직되었으며, 1997년 국민승리21 울산본부 위원장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하였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울산광역시교육위원을 지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울산시장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에 밀려 2위로 낙선했다. 열린우리당을 3위로 제치고 25%를 받은 것은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8년 1월 일심회 사태로 촉발된 민주노동당 분당사태 때 조승수와 함께 민주노동당을 탈당해 진보신당에 입당하였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 소속으로 울산 동구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안효대 후보에 밀려 역시 2위로 낙선했다.

이후 진보신당에 울산시당 위원장을 맡았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 소속으로 울산시장에 출마했지만, 한나라당 박맹우, 민주노동당 김창현에 밀려 3위로 낙선했다.


그 이후 진보신당을 탈당해서 새진보통합연대를 거쳐 통합진보당 창당에 참여해 울산시당위원장으로 일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울산 동구에 출마를 선언했으나 당 내 경선에서 울산연합계열 이은주 후보에게 밀려 불출마했다. (이은주 후보는 안효대 후보에게 패했다.) 통합진보당 분당 때 조승수, 이선호 등과 같이 탈당했으나 이후 정의당에 입당하지는 않고 무소속 신분을 유지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울산부모교육협동조합 이사장을 맡았다.

교육감당선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범진보 단일후보로 울산광역시교육감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울산 최초의 진보 교육감이 되었다. 특히 민주당 계열이 아닌 민주노동당-진보신당 계열의 진보정당 출신 후보가 교육감에 당선된 것은 전국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다. 또한 민선 최초로 울산광역시장도 더불어민주당의 송철호가 당선된 것은 덤이다.

교육감 임기를 시작하며 바로 울산의 각 초등학교에 있는 이승복 동상들을 시대에 맞지 않고 사실관계도 맞지 않으니 전부 철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강제적 야간자율학습을 폐지한다고 선언하였다. 실제로 2018년 이후로 울산광역시의 대부분의 고등학교 완전 야자 자율화가 이루어졌다. 이제야 진정한 자율학습이 되었다.

2020년 3월에 울산시교육청에 따르면, 부패방지 시책평가 1등급 달성, 무상급식 제공, 신입생 교복비 지원, 초·중학생 수학 여행비 지급, 모든 교실 공기정화장치 설치, 치과 주치의제 운영 등 공약 이행률이 68%라고 한다.


코로나 19 사태로 개학 전 108만 여 장의 마스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부 면마스크를 지역의 소규모 업체에 제작을 의뢰하는 상생 행보를 보였다.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29가구, 157명이 울산 동구에 정착하고 자녀 85명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노옥희 울산광역시교육감은 등교 첫 날 특별기여자 초등학생의 손을 잡고 함께 학교로 향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학생들은 별도 교실에서 6~12개월 동안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익힌 뒤 학습 정도에 따라 배정받은 학급에 개별 복귀하게 된다. 노옥희 교육감은 한국과 아프간의 첫글자를 따 별도 교실을 '한아름반'이라 이름붙였다고 전했다.

교육감으로서 평가가 좋은 편이다. 실제로 이후 9대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단일화 후보인 김주홍 후보와의 대결에서 10%p 이상의 차이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사망


교육감 재직 중이던 2022년 12월 8일, 점심 식사 중 갑작스럽게 심장마비 증세를 보였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사망했다.

울산광역시교육청은 이날 오후 2시에 교육청장으로 장례를 치룰 것인지 전례에 따라 황조근정훈장을 추서해줄 것을 중앙정부에 건의할 것인지 논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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