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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9.09 고바우영감 김성환화백 향년87세 별세

한국 대표 시사 만화가인 '고바우 영감' 작가 김성환 화백이 별세했다.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난 김성환 화백을 누리꾼들은 고인의 대표작 '고바우 영감'을 떠올리며 추모했다.


9일 한국만화가협회는 김 화백이 8일 오후 3시 45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1932년 10월8일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난 김성환 화백은 1949년 해방 후 창간된 연합신문에

네칸 만화 멍텅구리로 데뷔를 했다.

김성환화백의 대표작은 고바우영감이다.

고바우 영감은 한국의 대표적인 만화이자 만화캐릭터이다. 김성환 화백은 1955년2월1일자 동아일보

연재를 시작으로 1963년까지는 외부 기고형태로 작품을 발표했고 1964년에는 신문사에 입사해

고바우 영감 연재를 이어갔다.

1980년 8월9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뒤 1980년9월11일부터 1992년9월까지 조선일보 1992년10월부터

2000년10월 까지는 문화일보에 고바우 영감을 연재했다. 이렇게 연재한 고바우 영감은 총1만4139회를 연재하여

한국 최장수 연재만화로 기네스북에 등개되기도 했다.

2013년엔 등록문화재 538-2호로 선정되기도 했다.

1988년에는 세계만화백과사전에 등재됐던 김 화백은 <김성환 전집 고바우 영감> <고바우현대사>, 수필집 <고바우 방랑기> <고바우와 함께 산 반생> 등을 펴내기도 했다.

김 화백은 만화 때문에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57년 야당 의원의 7.27 데모사건을 다룬 잡지만화로 벌금형을 받고, 1958년 1월23일 ‘고바우 영감’의 ‘경무대 똥 치우기 만화’로 벌금형을 받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무대 똥 치우기 만화’ 사건 때는 서울시경 사찰과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위처럼 단단한 민족성을 상징한다는 뜻에서 이름을 ‘고바우’로 지었다고 한다.

만화는 1958년 김승호, 김희갑, 노경희가 출연한 영화 '고바우'로 제작되기도 했다. '고바우 영감' 전집은 네 차례에 걸쳐 출간됐고, 1977년에는 노이스턴대의 C. 파울 드레즈 교수가 '고바우의 언어'로 박사학위를, 2006년에는 교토세이카대학의 정인경 박사가 '고바우작가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 등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반세기 동안 시사만화 작가로 활동한 작가답게 동아 대상, 소파상, 서울언론인클럽 신문만화가상, 언론학회 언론상, 한국만화문화상, 보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고바우 만화상'을 제정, 한국만화계에 기여한 만화가들에게 상을 수상했다.

김성환은 시사만화와 함께 다양한 우스개 만화를 연재하기도 했다. 1950년대 초기 한국만화의 틀을 잡은 만화가 중 하나다. '꺼꾸리군 장다리군'으로는 학원만화를, '소케트군'으로는 명랑만화의 틀을 제시했다.



한국만화가협회 윤태호 회장은 "김성환 선생님은 한국만화의 큰 어른이었다. 특히 고바우 만화상을 통해 후배 만화가들을 격려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고바우 영감'을 더 이상 신문에서 볼 수 없을 때도 안타까웠지만, 이제 선생님도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더 아쉽다"며 한국만화의 큰 어른 김성환 선생을 추모했다.

김성환 화백 별세 소식에 누리꾼들은 '고바우 영감'을 떠올리며 추모했다.

누리꾼들은 "네 컷 만화의 대부이신 김성환 화백님. 하늘에서도 네 컷으로 국민에게 가르침을 주셨으면 좋겠네요", "우리의 고바우! 정치경제 시사만화로서 명실공히 한국역사와 함께한 소중한 별 김성환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일간신문 시대를 대변한 만화.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그리운 풍자만화 시절.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 컷짜리 고바우 영감으로 국민들 마음 시원하게 했던 멋쟁이", "고인은 가셨어도 고바우 영감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겁니다", "'고바우 영감'은 국민 가슴에 생생하게 남을 것"이라며 애도했다.

고인은 한국시사만화가회 명예회장, 한국만화가협회 고문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 아내 허금자 씨와 1남2녀가 있다.

고인의 빈소는 분당재생병원 장례식장 8호실에 차져리고 발인은 11일 오전 9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boy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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