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전스님열반에바치는글
★법전(法傳) 스님의 열반에 바치는 글
山色水聲演實相(산색수성연실상)
산빛과 물소리가 그대로 실상을 펼친 것인데
曼求東西西來意(만구동서서래의)
부질없이 사방으로 서래의를 구하려 하는구나
若人問我西來意(약인문아서래의)
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서래의를 묻는다면
巖前石女抱兒眠(암전석녀포아면)
바위 앞에 석녀가 아이를 안고 재우고 있구나
조계종 종정을 지낸 해인총림 방장 도림 법전 스님이 지난 12월 23일 입적하며 남긴 임종게죠.
'서래의(西來意)'란 '달마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라는 의미로 불법의 최고 화두인데, 달마는 남인도 팔라바 왕조 향지국의 왕자로 전법을 위해 527년 중국으로 건너가 소림사에 머물면서 교화를 펼치다 536년 교단의 기득권 세력에 의해 독살당한 분이죠.
특히 달마는 현학적인 철학체계에 갇힌 강학(講學) 불교에서 벗어나 본래의 청정한 자성(自性)에 눈떠 참선을 통해 바로 성불하라는 설법을 펼쳐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로 추앙받고 있는 분이죠.
若人問我西來意(약인문아서래의)
巖前石女抱兒眠(암전석녀포아면)
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서래의를 묻는다면
바위 앞에 석녀가 아이를 안고 재우고 있구나
결국 스님의 임종게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멀리 있지 않고 삼라만상이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죠.
“부처를 이루는 길도 자기 마음에서 시작되고, 윤회의 고통도 마음에서 일어나며, 모든 진리가 마음에서 시작되었으니, 마음 밖에서 진리를 찾지 말라."
스님은 항상 "중생의 자성(自性)에는 부처님 생명이 숨 쉬고 있으니 이밖에 따로 진리가 없으며, 찾으면 잃게 되고, 헤아리면 어긋난다”고 강조했는데 임종게도 같은 의미로 봐야겠죠.
한국불교의 대표 선승으로 평생 온화한 마음으로 세상을 품고, 깨달음에 한 생을 바친 법전 스님,
본명이 김향봉인 스님은 1925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4세 때 전남 장성 백양사로 출가했는데, ‘속가에 두면 단명할 팔자’라는 말을 들은 부모님 결정으로 속세를 떠나게 됐다고 하네요.
이후 스님은 24세 때 문경 봉암사 결사에 참여하여 성철·청담·향곡 스님 등과 함께 불교에 스민 왜색을 걷어내며 불교계의 혁신을 위해 평생을 바치죠.
51년 통영 안정사 천제굴에서 성철 스님으로부터 '도림(道林)'이라는 법호를 받은 스님은 한번 좌복에 앉으면 절구통처럼 요지부동한 채 수행정진하여 ‘절구통 수좌’로 불리기도 하죠.
특히 스님이 한 겨울 쌀 다섯 되로 밥을 지어 김치 단지 하나 두고 ‘내가 저 쌀이 다 떨어지기 전에 공부를 마치든가, 죽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겠다’며 묘적암에서 세 달 동안 목숨을 건 수행을 했던 이야기는 출가자의 본분을 보여주는 일화로 유명하죠.
"步步非身業(보보비신업), 聲聲非口業(성성비구업), 念念非意業(염염비의업)"
"결제(結制)란 걸음마다 몸으로 업을 짓지 않는 것이며, 말마다 입으로 업을 짓지 않는 것이며, 망상으로 생각의 업을 짓지 않는 것이다. 발걸음마다 진실한 땅을 밟아라."
스님이 평소 동안거 정진을 앞둔 수행자들에게 항상 당부하신 명나라 때 태암보장 선사의 말씀인데, 요즘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큰 가르침이 아닐까 하네요.
"대종사께서는 일생일로(一生一路)의 삶이셨으니, 때묻음 없는 동진(童眞)으로 출가하고, 일찍이 성철 노사를 친견하여 결사에 임한 뒤로는 일생토록 좌복을 여의지 않으신 눈푸른 납자(衲子)의 본분표상(本分表象)이셨다."
스님의 영결식에서 행한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의 법어인데, '일생일로(一生一路)'라는 말씀이 참으로 가슴에 와닿네요.
평생 "산을 만나면 길을 닦고, 다리를 만나면 물을 건너라"며 수행자들의 용맹정진을 강조한 법전 스님,
鏡鏡相互照(경경상호조)
거울과 거울이 서로 비치니
照無於影像(조무어영상)
비치는 것과 그림자가 둘 다 없더라
此是亦何物(차시역하물)
이것이 또한 무슨 물건이냐
靑山白雲裏(청산백운리)
청산이 백운 속이더라
스님의 오도송인데, 사부대중(四部大衆) 축에도 끼지 못하는 제가 스님의 큰 깨달음의 경지를 이해할 수는 없는 것,
스님의 오도송에 대한 어설픈 해석 대신 스님이 친필로 남기신 글귀를 한 구절 소개하는 것으로 마칠까요.
我不離汝(아불리여)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았고
汝不離我(여불리아)
너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汝我未生前(여아미생전)
너와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未審是甚麽(미심시심마)
무엇이었는지 모르겠구나